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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Jul 05. 2022

<水녀 -4> 오랜만이라 좋은 것들


오랜만이라 좋은 것들이 있다. 매일 찾아오는 회식은 끔찍해도 코로나의 종말로 세 달 만에 찾아온 회식은 나름 즐겁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지만,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회사에서 보내는 직장인에게 직장 동료만큼 업무 스트레스를 나누기 좋은 사람은 없다. 상사 때문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뻗쳤을 때 ‘쟤 왜 저러냐’라는 눈빛 한번 보내주는 동료가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나기 마련. 이런 동료와 오랜만에 기울이는 술잔은 평소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회식 자리도 나름 힐링 시간으로 만들어준다. 평소 일대일로, 단둘이 만날 일은 절대 없더라도.



오랜만에 찾아온 카톡은 반갑기도 괘씸하기도 하다. 가끔 안부가 궁금했던 고등학교 친구가 먼저 보내온 연락은 괜히 나를 들뜨게 한다. 그러다가 모바일 청첩장으로 나의 반가움에 화답하는 친구들은 괜히 얄밉다. 결혼하는 것도, 결혼을 알리는 것도 잘못은 아니겠지. 다만, 결혼이 아니었으면 오랜만의 안부 인사가 없었다고 생각하니 섭섭할 뿐. 대학교 졸업 이후 소식이 뜸했던 친구의 연락은 부대찌개 라면 사리를 집던 젓가락도 내려놓게 만든다.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기쁜 마음에 답장을 보내면, 나의 직업적 특성에 관계된 부탁들이 쏟아진다. 어느 날, 문득, 미친 듯이 내가 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카톡을 보내주는 사람은 왜 없지.



내 일상에 오랜만에 찾아오는 것들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몇 달 만에 찾아온 턱 끝 여드름은 하루 종일 기분을 언짢게 만든다. 여드름에 마스크가 닿을 때마다 좁쌀 같던 여드름이 노란 고름을 품고 엄지손톱처럼 커지는 상상을 하게 된다. 괜히 면봉으로 건드리면 다음 날 아예 흉터가 생겨버리는 재앙이 일어난다. 오랜만에 울리는 윈도 업데이트 알람은 입에서 거친 욕이 튀어나오게 한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내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화면에 띄어지는 주황색 업데이트 진행률은 내가 다혈질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오랜만에 침대 모서리에 부딪힌 엄지발가락. 그 고통으로 토해내는 살벌한 욕은 내 안의 잠재된 폭력성을 확인시켜 준다.





오랜만이어서 힘든 것도 있다. 수영이다. 2주 만에 찾은 수영장은 너무 낯설다. 물이라는 것은 굉장히 낯을 가리는 존재다. 물론 수영 초보자의 입장에서다. 몇 달 동안 내 몸을 담그고 신체적 접촉을 수도 없이 했음에도, 금세 나를 모른척한다. 어찌나 새침하게 나를 대하는지 물에 얼굴을 담그는 느낌조차 새로워서 ‘음파 음파’ 숨쉬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신체적 촉감만 새롭다면 괜찮은 수준이다. 오랜만에 담근 팔과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서 평소 속도의 절반도 내기 힘들다. 이렇게 죽을 맛으로 50분을 채우고 집에 갈 때쯤 갑자기 친한 척을 한다. 그리고 “오늘 힘들었지?”라는 듯 부드럽게 내 다리를 감싸준다. 이런 나쁜 남자 같으니.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 힘들지 않으려면, 다들 의견이 다르긴 했지만, 최소 3년이라고 했다. 무언가 하나를 3년 동안 꾸준히 하기도 쉽지 않은데, 3년을 하면 수영을 정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찾은 그곳이 낯설지 않은 그 정도라니. 이렇게 밀당하는 수영이 너무 괘씸하다. 다른 스포츠 중에 이렇지 않은 종목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지금 내가 하는 게 수영이라 제일 얄미운 것도 수영장이다. 달력을 보니 이번 주는 생리 주간이다. 다음 주에 찾아갈 수영장의 밀당에 고생할 생각을 하니 오므린 발가락에 쥐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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