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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Jun 06. 2022

<水녀 -3> 형형색색


형색색. 이 네 글자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일주일에 세 번, 내가 강습 받는 바로 앞 타임에는 유치원생들 수업이 있다. 오늘 요놈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일단 첫 번째는 시선을 강탈하는 탈의실 신발장이다. 아이들 수업이 있는 날이면 검은색 신발로 가득하던 신발장이 무지갯빛으로 가득하다. 빨간색, 분홍색, 초록색, 파란색 심지어 은색 신발까지. ‘다다다’ 뛰어다니는 조고만 발을 붙잡고 이런 신발은 대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두 번째로는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다. ‘거기 들어가지 마!’ ‘이리 와!’ ‘그건 만지면 안 돼!’ ‘진짜 말 안 들을 거야?’ ‘지금 안 오면 다이빙 안 시켜줘!’ 등 아이들을 타이르는 소리, 야단치는 소리, 훈계하는 소리. 듣고만 있어도 아이들이 얼마나 온 힘을 다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지 느낌이 온다. 딱 이때만큼은 일면식도 없는 저 강사님한테 괜한 존경심이 든다. 성인반 강습에선 저런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가 나올 일이 없다. 강사님이든 수강생이든 격식을 차린 존댓말을 어색하게 사용한다. 너무 예의가 발라서 문제다. 가끔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는 강사님의 썰렁한 개그에 다들 기계적인 미소를 띠며 괜한 물안경을 고쳐 쓴다.



세 번째는 화장실. 뒤에 이어질 내용은 식사 중만 아니라면 크게 비위 상할 정도는 아니다. 일단 우리 수영장 변기가 좀 특이한데 물을 내리려면 레버를 밑이 아니라 위로 올려야 한다. 몇몇 공중화장실이나 한강 화장실 레버도 이랬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인생 경험에 비춰보면 레버의 역방향은 오래된 시설이란 방증이기도 한데, 이건 시설 관리자의 사정이고 아이들 반응은 ‘알게 뭐람’이다. 아이들은 평소 착실하게 배운 대로 볼일을 본 뒤 레버를 밑으로 내리는데 변기가 꿈쩍도 안 하니 도리가 없다. 그저 ‘이상하다?’라는 의문의 고갯짓과 함께 그대로 집으로 돌아간다. 몇 번 이 광경을 목격했는데 아이들에게 “네가 물 내리지 않는 거 다 봤어. 앞으로는 이렇게 내려”라고 얘기하는 게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진 않을까 하는 고찰의 과정을 거쳤다. 이제는 화장실에 가면 두 눈을 감고 조용히 레버를 위로 올린다.



마지막으로는 수영장 물맛이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간 수영장 물은 뭐랄까. 물이 살아 있는 느낌이다. 평소 수영장 물맛은 우리가 상상하는 딱 그 맛이다.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락스 냄새와 수돗물의 비린내가 섞인, 그 비율이 너무 정교해 계속 찔끔찔끔 먹다 보면 먹을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소독물 맛이다. 반면, 소변이 급한 아이들이 오줌을 지리고, 코도 풀고, 물에 빠진 뒤 ‘캑캑’ 기침도 하며 침도 뱉었을 물에서는 풋풋한 맛이 난다. 내가 느낀 그 풋풋함이 아이들의 앳됨에서 오는 다분히 생물학적인 숫자에 근거한 편견이라는 반박, 인정한다. 그래도 이 편견이 그날 하루 나의 강습을 괜스레 더 설레게 만든다. 이런 날은 특이하게도 수영장에 이상한 수영복을 입고 오는 아저씨들이 꼭 한 분씩 있어서 웃음 참는 게 힘든 건 비밀.



강습이 끝난 뒤 드라이기 경쟁에서 밀려난 나는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붙잡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대충 물기를 털고 탈의실을 나설 때면 수영하는 동안 숨쉬기에 밀려 망각의 강을 건넜던 내일의 업무와 할 일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급해진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방을 챙기고, 탈의실 문을 ‘쾅’ 닫고서 신발장으로 오니 아까 들어올 때 봤던 형형색색 무지개가 전부 자취를 감췄다. 검은색 단화, 검은색 뮬, 검은색 컨버스, 검은색 쪼리.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신발장이 무표정하게 나를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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