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잖이 감동했다.” 최근 회사 동료에게 들은 감사 표현이다. 나의 아주 작은 호의에 대한 대답이었다. ‘감동이야’ ‘감동이다’ ‘감동받았어’라는 표현 뒤에 하트와 눈물이 가득한 이모티콘. 일상에서 많이 쓰는 감사 인사다. 클리셰 같은 표현이라 별일이 아니더라도 자주 쓰고, 또 듣던 말이다. 그런데 이 앞에 ‘적잖이’라는 수식어 붙는 순간 가슴이 말랑해졌다. 그리고 혼잣말로 ‘적잖이’를 여러 번 되뇌었다.
적잖다. 사전에는 ‘소홀히 하거나 대수롭게 여길 만하지 아니하게’라고 나온다. 나의 호의를 소홀히 대하지 않고, 또 대수롭게 여기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려 괜스레 뭉클했다. 내가 타인의 호의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이 지점이 뭉클한 게 아닐까 싶다. 동료가 출근길에 사다 준 커피 한 잔, 건강 챙기라며 친구가 뜬금없이 보내온 비타민 기프티콘, 퇴근 후 내 방 책상에서 발견한 동생의 쪽지.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그들의 호의가 새삼스럽게 너무 감사했다.
근래에 나에게 적잖은 감동을 준 베스트를 꼽으라면 수영이다. 지난 주말 대학교 친구들과 경기도 가평 빠지에 물놀이를 갔다. 한번 타면 또 안 탄다는 웨이크 보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왜 한번 탄 사람은 또 안 타는지, 물론 잘 못 타는 사람에 국한된 얘기다, 직접 타보니 느낌이 왔다. 10분에 5만원이 쓱싹 되는 아주 고비용 취미에다가, 그 5분도 제대로 못 즐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단 웨이크 보드 판위에 일어서야 뭐라도 즐길 텐데, 일어서기까지의 과정만 겪다가 그날의 웨이크 보드 체험이 모두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
그런데 웬걸. 나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도 아닌데 그날 웨이크 보드 ‘뽕 뽑았다’ 할 정도로 즐기고 왔다. 결론적으로 강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물론 초반에 강물과 얼굴 판치기를 하며 까만 물속에 꼬르륵 잠수할 때는, 내 시야에 모든 공간이 들어오는 사각형의 수영장이 너무 그리웠다. 적당한 락스로 깨끗이 소독된 수영장 물에는 벌레도 없고 내 발밑에 고무줄, 밴드, 귀걸이 등등 뭐가 있는지 다 보인다. 반면, 강물은 오로지 까맣다. 구명조끼를 입고 강물 한가운데 둥둥 떠 있을 때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암흑에 뛰어들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그런 후회를 두 번쯤 하다 보니 강물에서 평영 발차기도 연습하고, 배영처럼 누워서 여유도 부리게 됐는데, 이때 즈음 웨이크 보드에 기적처럼 두 발을 붙이고 일어섰다. 일어서고 끝이냐, 그것도 아니다. 그때부터 내 몸이 감을 잡았는지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에이스라는 칭찬도 들으면서 아주 훨훨 날아다녔다. 내 두 발은 보드 판을 떠난 적이 없지만, 체감상 허공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느낌이었다
수영 덕분에 강물과 친해졌지 않았나 싶다. 일단 물이 주는 촉감, 물과 살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 물이 흐르는 모양. 몇 번 빠지다 보니 수영장 물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많이 다르긴 했는데, 다르지 않다는 세뇌가 잘 먹힌 것 같다. 물론 이 또한 수영 때문이다. 아예 수영장 물에도 못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이런 세뇌가 효과가 있을 리가 없지.
최근 접영을 배우면서 잠시 수영을 멀리했었다.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파닥거리는 두 팔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수영은 나랑 맞지 않아’를 외치고 있었는데, 가평에 다녀오고 생각이 바뀌었다. 웨이크 보드 판에 두 발을 딛고 일어선 순간, 적잖은 감동이 밀려왔다. 수영,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