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앞에 신기한 카페가 생겼다. 들어가 보진 않았는데 먼발치에서 봐도 신기하다. 카페 앞에 세워진 메뉴판 때문이다. 메뉴판이 온통 ‘캔(CAN)’ 사진이다. 오가면서 흘끗 쳐다본 바로는 이 카페에서 파는 모든 메뉴는 캔에 담겨 나온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딱 맥주캔 500ml 크기다. 처음에는 캔을 마시는 손님들을 보고 캔 맥주를 파는 신개념 펍인가 하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생이 편하겠다. 이게 먼저 떠올랐다. 무슨 메뉴를 주문하든 주문에 맞는 캔을 꺼내주기만 하면 되니까(아직 어떤 원리로 손님에게 완성된 캔을 주는지는 확인하지는 못했다). 딱 거기까지가 이 카페에 대한 내 느낌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커피의 맛이라 하면, 에스프레소 머신이 ‘우르르릉’ 고통의 소리를 내면서 까만 에스프레소를 쪼르륵 내뱉는 시각적 과정까지 포함된다. 때문에 저 캔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크게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이 카페에 가야겠다는 충동이 들었다. 소나기가 내리던 오후 9시쯤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나왔더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것 중 하나가 예상치 못한 소나기에 굴복해 CU에서 구매하는 비닐우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소나기를 맞으며 후다닥 뛰어가는데 이 카페의 샛노란 불빛이 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불빛을 받는 테라스가 눈에 띄었다. 날이 밝을 때는 보이지 않던 테라스였다. 어두워지니 테라스 옆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대비가 천막 위로 우두두 쏟아졌고,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사람이 떠나간 골목길의 고요는 빗소리를 증폭시켰다. 수십 번 그 카페를 지나쳤는데 처음으로 저 카페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날 미처 마치지 못한 회사 일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무도 없는 테라스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엉덩이를 구겨 넣고, 대충 세워 놓은 간이 테이블에 커피 한 캔 올려두고 비 구경이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는데 그렇게 못했다. 놀고먹는 백수가 아닌지라 아주 가끔 이런 감성적인 생각이 들 때도 항상 1순위는 회사 업무였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쪼리에 들어오는 차가운 흙탕물을 찜찜하다고 느끼며 집으로 뛰어갔다.
한 달 즈음 지났는데 아직도 그 카페는 가보지 못했다. 한번 내 맘에 들어오고 나니, 날이 좋을 때는 좋아서 그 테라스에 가보고 싶고 흐릴 때는 우울한 느낌에 끌려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이유가 생겼다. 다 집에 가야 하는 이유였다. 오늘은 회사 일이 남았는데, 오늘은 영어 공부하는 날인데, 오늘은 어제 보다가 말았던 미드 정주행해야 하는데, 오늘은 줌 회의가 있는 날인데.
나는 내가 나름 한량 같은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실 여유가 없었다. 오늘은 수영을 마치고 그 카페를 지나치는데 테라스가 입소문이 났는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 무리가 가득 앉아있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바람이 솔솔 부는 조용한 골목길 테라스 카페는 청춘 남녀가 가장 선호하는 1 번지다.
곁눈질로 그들을 지나는데 깨끗했던 테라스 테이블 위가 담뱃재로 가득하다. 안 그래도 어설퍼 보였던 간이 의자 상다리는 이미 하나가 부러진 듯했다. 장대비가 내리던 밤 내 코를 킁킁거리게 했던 비 비린내 대신 여러 종류의 담배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테라스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테라스가 더럽혀진 게 거슬렸는지, 그날 밤 테라스를 점유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됐는지 괜한 짜증이 온몸에 찾아오면서 입안이 텁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