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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므소 Jul 08. 2022

<水녀 -7> 적의 심장을 쏴라


세상에. 오후 8시가 됐는데 아직도 밝다니. 여름이 오면 클리셰처럼 내뱉는 감탄사다. 어느 목요일 오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요일만 지나면 주말이 온다는 생각에 오후 6시 퇴근부터 행복했던 목요일,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를 제대로 느끼며 친구와 쌀국수 한 그릇을 해치웠다. 뜨거운 국물을 먹었으니 후식으로는 이가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팥빙수를 먹자! 하고 잠깐 생각했으나, 10분 뒤 내 앞에는 수증기가 폴폴 올라오는 티포트가 놓여있다. 나이가 들었는지 시원한 걸 마셔야지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뜨거운 라테요"를 주문하고, 땀을 많이 흘렸으니 냉 샤워 한판 때려야지 하면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 아래서 “시원하다”를 중얼거린다.

친구와 나는 뜨거운 찻잔을 ‘호호’ 불면서 “덥네” “여름이다” “가게 안은 시원하다” 등 너무 당연한 말들을 늘어놓다가 여름휴가라는 주제에서 잠시 멈췄다. 길고양이가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마침 구미가 당기는 캔 하나를 발견해서 ‘한번 냄새나 맡아볼까’하는, 뭐 그 정도의 얕은 의욕으로 휴가를 논하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나의 설레는 웨이크보드 예약이었다. 다음 주 가평 빠지로 첫 웨이크보드 체험을 떠나는데 대학교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했지만 네가 원한다면 함께 가도 무방하다는, 상대방 열에 아홉은 허허 웃으며 “됐어”라고 말하는 그런 가벼운 종류의 제안도 함께였다.

“물이 무서워.” 친구는 수상 스포츠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고정 답변 중 하나를 뱉었다. 물이 무섭다라. 물이 무서운데 그 위에서 하는 스포츠가 싫은 것은 당연지사. 친구는 수영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1년 내내 수영 얘기만 하는 내가 신기했는지 이렇게 질문했다. “그럼 너는 물에 떠?” 나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원래 사람은 물에서 다 떠.” 이 질문을 나도 수영을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수없이 했던가. 이제는 내가 이 질문에 대답 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 그 대답을 할 때 재수 없는 미소도 은은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친구는 물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어떻게 극복했더라. 사실 나는 어렸을 적 자랑스러운 아기 스포츠단 YMCA 출신이었다. 왜 ‘자랑스럽다’라는 쓸데없는 수식어를 붙였는가 하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YMCA 출신이라고 하면 운동을 잘할 것이라는 사람들이 가진 근거 없는 편견이 기분 좋았다.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은 운동신경이 모두 소멸해버린 것인지, 어렸을 때 배운 수영이 어른이 돼서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물을 무서워하는 대부분 사람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벌벌 떨다가 코로나 직전 떠났던 여름휴가에서 물에 대한 공포를 완전히 극복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적의 심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이 무서워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무서워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에게 수영이 무서웠던 이유는 물에 간신히 몸을 띄운 그 상태였다. 물속에 들어가지도, 온전히 물 위에 떠 있지도 않는 그 어중간한 상태가 너무 기괴했다. 아슬아슬한 경계의 수면은 간간이 내 코와 입, 그리고 귓속을 ‘찰싹’ 때리는데 그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수영에 대한 공포만 극대화됐다. 그러다 같이 여름 휴가를 떠났던 친구가 물속에 자유 자재로 잠수(?)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한참을 부러워만 하다가 나도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물속 깊이 (깊어도 겨우 수영장이긴 했다) 몸을 잠수시켰다. 그랬더니 딱 3초 후 공포가 사라지면서 나에게 자유가 찾아왔다.

생각해 보면 공포라는 것은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촉발된다. 놀이 기구가 무서운 이유도 온전히 땅에 붙어있지도, 완벽히 하늘을 나는 상태도 아니기 때문. 백수가 두려운 이유는 학생과 사회 초년생 그 어딘가의 경계에서 부유하고 있어서다. 자격증 시험도 똑같다. 분명 공부는 많이 해서 지식은 전문가 수준이지만, 자격증이 없다면 비전문가로 분류된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그 경계를 탈출하는 시험은 항상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이런 경계의 공포를 허무는 방법, 그 공포의 심장으로 침투하면 된다. 단, 이런 경계가 행복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썸’이다. 올해 나는 꼭 행복한 경계 위에서 휴가를 보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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