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므소 Jul 30. 2022

<水녀-12> 모범택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내 바로 앞에 검은색 차가 한 대 섰다. 모범택시였다. 멈춘 택시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 명의 일본인이 내렸다. 이들은 캐리어를 끌고 내 뒤편의 호텔로 들어갔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건 새삼스럽게 모범택시에 대해 생각하면서다.

모범택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년도 넘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모범택시를 타보지 못했다. 타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매년 오르는 택시 기본요금은 백원 단위까지 알고 있지만, 모범택시의 기본요금을 알았던 적은 없다. 모범택시 기사님의 복장은 평범한 사복인지, 유니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범택시를 무서워했다. 탄 순간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올라가는 요금에 두 다리를 덜덜 떨 것을 생각하면서, 지레 겁을 먹고 모범택시를 외면했다. 아마 나의 추측으로는, 카카오택시 블랙 정도의 가격이거나 그보다 조금 저렴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마음에 들지는 않고, 반품이 귀찮아 옷장에 처박아둔 봄 재킷이 있다. 이 재킷이 회사에서 집까지 모범택시를 타고 오는 가격일 테다. 객관적으로 싸진 않지만, 그럼에도 그 비용을 지불하지 못할 정도의 사정은 아니고, 모범택시로 얻게 될 나의 편의와 시간을 생각하면 한 번도 입지 않게 될 재킷에 비해 훨씬 유용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나는 확신한다. 심각하게 긴급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모범택시 탈 일은 없을 것 같다. 두려움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습해 온 모범택시에 대한 두려움이 이렇게 나의 정신을 지배해버렸다.

알지 못하는 정보에 대한 두려움. 이게 정말 어마어마하다. 오늘 점심만 해도 동기와 방문한 식당에서 ‘크림토마토나베’라는 정체불명의 신메뉴를 시키고선,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나중에는 긴장을 넘어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우려의 단계까지 넘어갔는데, 잘 모르는 대상을 탐험하는 일은 비용을 떠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게 고작 점심 메뉴라 할지라도.

재작년. 처음 수영을 배우겠다고 수영장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낯선 공간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일이 솔직히 말하면 참 무서웠다. 이미 수영장이 집 욕실처럼 편해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부러웠다. 쭈뼛쭈뼛 수영복을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수영장으로 걸어 나가 커튼을 여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국가대표의 비장함과 다르지 않았다.

오늘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나를 괴롭힌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을까?’ 나는 답을 찾지 못하는 타인의 심리가 가끔 무섭다. 절대 다다를 수 없는 사람들의 진심과 끝까지 밝혀낼 수 없는 그들의 의도는 잠자리를 뒤척이게 만든다. 이래서 모범택시가 싫다.

이전 12화 <水녀-13> 그 남자 그 여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