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문장들 2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의 문장을, 딸이 엮은 기록.

by 밍키

" 달빛 아래 수박이 떠내려가던 밤 "


원두막 지붕에는 수박 넝쿨 같은 박 넝쿨이 옷을 입은 듯 뒤덮고 있고,
물동이 같은 커다란 박이 은빛 달빛을 머금고 알차게 영글어 가며
활짝 핀 박꽃은 은은한 달빛을 받아 서기하듯 피어 있다.

호롱불이 꺼진 원두막에서는 시조를 읊조리는 장씨 아저씨의 구성진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속을 파고들고, 돌담처럼 쌓인 수박은 넓은 밭 가득 널려 있다.

물속에서 모가지만 내놓고 수박밭을 노려보던 상길이가 갑자기,
“너희들 합수머리에 가 있어. 수박 떠내려오는 거나 잘 건져라”

모두 헤엄쳐 돌아가고, 나만 남게 된다. 입맛이 씁쓸하다.

벌거숭이 상길이가 살금살금 수박밭으로 기어오르고
그 꽁무니에 나는 실처럼 따라붙는다.

시조 읊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원두막 뒤로
상길이는 수박을 따고, 나는 그것을 개울물에 띄운다.

수박은 달밤에 뱃놀이하듯, 두둥실 두리둥실 잘도 떠내려간다.
한 통, 두 통, 셋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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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수박, 여름밤의 장난, 그리고 시간의 은유.

이 글을 읽으며 문득, 여름이라는 계절이 참 너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난도, 도둑질도, 시조 한 소절도
모두 용서되는 밤이었던 것 같다.


은빛 달 아래에서 영글어가는 박이며,
수박을 따서 물에 띄우는 아이들의 모습이며,
시조를 읊는 어른의 음성이 겹쳐지며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풍경이 마음을 적신다.


물 위를 두둥실 떠가는 수박이
단지 수박만은 아니었다.

그건 아버지의 여름방학이요,
시골의 여유이고,
지금은 사라진 어떤 아름다움이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장면은,
“수박은 달밤에 뱃놀이 하듯 두둥실 떠내려간다.”는 구절이었다.
그 짧은 한 줄이,
이 글 전체의 정서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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