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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Oct 04. 2018

'같이 걸을까'라는 말

외로울 때 필요한 건 어쩌면 함께 보폭을 맞춰줄 사람


 오랫동안 고시촌이라 불리는 이름의 동네에 살아가면서도 마음의 따스함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 아주 가까운 곳에서 10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온 후배가 있기 때문이었다. 언양이라는 이름의 작은 동네에서 상경한 우리는 이따금 마음이 지나치게 외로워질 때면 서로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혼자 시장의 작은 칼국수 집에 앉아 울퉁불퉁한 면발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와 함께 빨아 당기고 있을 무렵, 동생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언니, 뭐해? 언니 칼국수 다 먹고 나면 우리 산책 갈까?"



 적당히 편안한 옷차림으로 서로를 만나면 우리는 문득 밀려오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입으로 읊어대곤 했다. 직장에서 받는 부당한 대우, 좁아터진 방,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의 허기라던지 덜 쓰고 덜 먹고 살지만 아이러니하게 늘 비어있는 통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에겐 '잘 지내고 있다'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 같은 것들이 그러했다. 그것은 마음 하나 나눌 곳 없는 서울이라는 동네에서 오롯이 가깝다고 생각이 되는 서로에게만 꺼낼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문득 밀려오는 서글픔을 어쩌지 못하는 삶의 주변인이 되어 있었다.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차가워져 버린 바람을 핑계 삼아 서로의 체온을 빌려 걸음을 옮기던 동생은 나에게 물었다. 



"언니, 이렇게 힘들면서도 우리가 서울을 계속 고집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대체 뭘까?"



내가 더 묻고 싶은 말이었다. 


무표정의 가면을 쓴 사람들, 법을 교묘히 이용해 부당하게 월급을 가로챈 대표, 술과 피곤에 적당히 찌들어버린 나 그리고 꾸역꾸역 몸을 구겨 넣어야 비로소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2호선의 지하철, 지하철을 뚫고 나오면 계단 한편을 묵묵하게 채우고 있는 낡은 옷의 아저씨와 그 곁에 놓인 의족 하나, 우편함을 채우는 그리운 편지 대신 차가운 숫자만 가득한 고지서들은 느리지만 온기가 가득한 시골의 것과는 까마득하게 달랐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는 장면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할 때면 내 잘못도 아니면서 나는 자주 고개를 숙이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면 언제나 신발끈을 묶고 홀로 도림천을 걷곤 했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이 누군가와 함께 그곳을 걷고 있었다. 함께 산책을 가자고 말하던 엄마가 보고 싶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는 혼자 걷더라도 따뜻한 풍경의 호주가 그리웠다. 이런 수만 가지의 마음이 드는 날에는 함께 보폭을 맞춰 걸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그녀가 곁에 살고 있다는 건 너무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시간이 날 때면 이따금 도림천을 걷곤 했다. 내가 신대방에 살던 시간부터 신림에 살던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보라매 공원이나 도림천으로 자주 도보 여행을 떠나곤 했다. 넉넉하진 않아도 맥주 한 캔, 과자 한 봉지로 작은 행복을 누리는 법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황당한 실수를 하고 이불 킥을 하고 싶은 날이나 육두문자를 써가며 세상에게 욕을 던져버리고 싶은 날, 뭐든 다 짜증 나고 열 받는 날이면 전화 한 통으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서로에게 너무나도 큰 다행이었다. 




 외롭고 서러운 하루를 몇 번이고 견디며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 조금씩 말라가는 몸을 밀어 넣고 한 때 나의 부모님이 느꼈을 어른의 시간들을 조금씩 이해해 가는 중이었다. 그래도, 너무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돌아가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우리가 초록을 그리워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우리는 늘 도림천 벽화에서 만나고 또 헤어지곤 했다. 그녀는 아마 모르겠지만 나는 신림동의 화려한 네온사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언젠가의 우리도 지금처럼 오래오래 함께 산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뒤돌아가는 그녀의 그림자를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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