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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ug 10. 2017

첫 자취방 관찰기

신대방역 203호 

 

2주째 앓고 있었다. 


서울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중이었다. 집 천장을 이렇게 오래도록 올려다본 것은 아마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내가 이 집을 계약하고 난 이후로 나는 줄곧 바쁘게 살아왔으니 말이다. 호주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새로운 직장을 구해 강남으로 출퇴근하던 중이었으며 서울살이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회사는 결국 어려워져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희망 퇴사를 권유했다. 어차피 배울 점이 없는 회사였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집 천장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서울에 돌아와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내 앞에 놓인 현실이 서러워서도 아니고, 월급조차 주지 않은 그 회사가 미치도록 미워서도 아니었고, 내가 서울이라는 도시에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어쩌면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이유들로 인해 대상포진에 걸려 집에 누워있게 된 것인지 몰랐다. 술을 좀 마셨다. 그냥 마신 것이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조금 서러워서 마셨고, 아무도 없는 집 구석이 외로워서도 마셨고, 함께 퇴사를 하게 된 이들과 안녕의 의미로도 마셨다. 그렇게 자주 술을 마시고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잦아지다 보니 어느새 브래지어 선 언저리에 따끔따끔한 녀석들이 무리를 이루고 등장하게 된 것이었다. 등 한가운데 자리한 물집들이 번질까봐 온전히 누워 잠들지 못했다. 엎드려서 혹은 비스듬히 누워 매일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라는 사람이 곁에 있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건 그는 매일 바쁜 일상과 이미 영업에 지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있어도 더 외롭기만 한 관계라면 남자 친구 있어요?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어도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상에 놓는 거울 하나 없이 살았기에 약을 바르기 위해서는 언제나 화장실로 걸어가 윗 옷을 벗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고개를 몇 번이고 갸우뚱거리며 연고를 바른 나는 자연인처럼 옷을 벗고 비스듬히 누워 6개월 간 감사함을 잊고 지냈던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렇게 아프고서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쉼을 허락하는 나의 지랄 맞은 성격에 가끔 넌덜머리가 나곤 했지만 오늘은 비가 오는 센치한 날이라 그 모든 것들이 용서가 되던 중이었다. 비가 오면 어차피 밖에 나갈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날엔 집에 누워 비 오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일도 썩 괜찮은 휴식이 된다. 시선이 어느덧 천장에 닿았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다른 어느 집들보다 탁 트인 공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이 집을 덥석 계약했다. 물론 그때 나는 해가 떠있는 시간에 집을 봐야 채광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집 계약을 위해 다시 이 곳을 방문했을 땐 벽면의 곰팡이 친구들이 나를 맞이해 주고 있었다. 계약금을 내기 직전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든 집주인 내외는 곰팡이를 바라보고 있는 내 뒤로 명절이 겹쳐있는 일주일 동안 도배를 새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명절이 끝나고 이사를 들어왔을 땐 거짓말처럼 새하얀 방이 되어 있었다. 도배된 형태를 보아하니 전문가에게 맡기신 것은 아니셨지만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벽지도 나는 용인할 수 있었다. 태어나 처음 가져보는 자취방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덕지덕지 하얗게 붙어있는 벽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에게 말했다. 

 잠이 오지 않는 늦은 밤, 천장을 올려다볼 때면 전 주인 혹은 그 전 주인이 붙여 놓았을 야광별이 하얀 벽지를 뚫고 어두운 방을 은은하게 밝히곤 했는데 나는 누군지 모를 그 야광별의 주인에게 이따금 감사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물론 그 사람은 신대방 자취방 천장에 붙여둔 야광별의 존재는 까맣게 잊었을 테지만 말이다. 밤이 무서워질 때면 그 별이 언제나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천장을 올려다 보았을 누군가들을 생각하다 보면 서울이라는 낯선 동네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만 외로운 일은 아니라고 위로받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야광별이 붙어있는 자리를 지나면 마침내 십자 모양의 메인 전등을 만나게 된다. 4개의 전등이 자리했을 이 곳엔 이제 2개의 전등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머지 2개의 전구에 대한 필요를 처음부터 느끼지 못하며 지내왔기에 나는 오늘에서야 온전하게 4개의 전구가 모두 자리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흰 벽지 위 여전히 거뭇거뭇하게 남아있는 그을림 자국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온몸을 뜨겁게 달궈 본인의 일을 다하고 맹렬히 전사한 전등은 잔잔하고도 선명한 흔적만을 남기고 떠났다. 전등도 저렇게 뜨겁게 살다 가는데 서른 살의 나는 간절한 것 하나 없이 방구석에 누워 우울함을 이불 삼아 덮고 있으니 이 것은 이 집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소처럼 누워 환경을 탓하기엔 이 집을 지나쳐간 사람들은 너무도 뜨겁게 살았을 테니까. 나는 그제야 부엌으로 걸음을 옮겨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이 집의 다음 주인에게 용기를 주려면 나도 저 야광별을 붙인 사람처럼 따뜻한 흔적 하나 정도는 세상에 남기고 가야 하는 게 아니겠냐고 메밀차를 후후 불어 마시며 생각했다. 아마 지금은 친구가 말했던 '서른 통'을 지나는 모양이다. 서른이라는 무거운 발음을 짊어지고 가려면 이 정도의 성장통은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도 차를 끓여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아픔이라 나는 무척이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다 집어치우고 일단 내 몸 하나 건사하는데 의의를 두자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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