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끼니를 대충 때우는 습관은 집에서 일찍 독립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무엇을 먹든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과자 한 봉지, 떡볶이 1인분, 라면 하나로 허기를 급하게 처리할 때가 많았다. 배고픔은 언제나 배고픔 그 자체가 아니라 외로움이나 서러움 혹은 자괴감으로 돌아오곤 했고 나는 그 감정들을 직시하는 것이 두려워 어설픈 끼니로 그것들을 잊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호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수중에 남아있는 돈은 5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줄어가는 잔고를 보면서 배고플 때면 컵라면 하나로 허겁지겁 때우던 끼니. 그리고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달리기를 하며 버텼다. 2년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내 삶은 버티는 일이 전부인 시간이었고 그 시절의 내 자존감은 언제나 피해 의식에 쌓여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연애를 꿈꾼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분명했다. 그렇게 홀로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기보다 나 스스로가 먼저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던 중 만난 DJ는 나의 많은 것들을 달라지게 한 사람이었다. 자존감이 낮았던 내가 달리기를 하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던 그때, 한 달간의 프로젝트에 모든 열정을 쏟으며 그 와중에도 새벽 달리기를 해나가던 나를 보며 그는 나를 '반짝거린다'라고 표현했다. 사막의 땡볕에서 몇 시간을 버티고 기진맥진 돌아와 땀냄새가 나는 모습으로 점심을 먹을 때에도 그는 눈을 반짝이며 일하는 내 모습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외적인 모습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진짜 모습’들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사람. 그래서 나는 4년 만의 금기를 깨고 그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말 그대로 나의 상태는 공허했다. 호주와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건널목에 가득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바라만 보는 것도 현기증을 일으키곤 했다. 나는 점차 작아졌고 집에 오면 풀 죽어 있을 때가 많았다. 회사에서 나를 훑어보는 누군가의 시선은 나에게 하나의 폭력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런 나에게 이따금 말을 건네곤 했다. 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과 내가 지금까지 32년의 시간들을 지나오며 해내 온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모두가 나를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 아이러니함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는 잦은 야근에도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아 끼니를 채우곤 했다. 그는 나에게도 항상 말했다.
“너 스스로를 귀하게 대해줘. 그래야 남들 역시 너를 그렇게 바라보게 되니까 말이야”
귀찮고 일이 늘어나더라도 나는 그를 만난 후 작은 사치를 부리게 되었다. 예쁜 그릇에 담아 한 끼의 식사도 ‘잘하는 일’ 말이다. 이 별것 아닌 작은 습관은 그 후로 나를 돌보는 습관으로 또 나를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나비효과가 되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그를 만나고 아주 좋은 습관 하나를 실천해가는 중이다.
# Jessie 88년 천칭자리 / 서호주 사막 여행자로 살던 중 우연히 만난 남자와 지구별, 서울시에서 사는 중 / 회사와 맞지도 않으면서 회사원 코스프레하며 사는 중 / 외롭고 힘들 때 요가, 달리기, 글쓰기, 와인 마시기를 함
.
.
#DJ 86년 전갈자리 / 바리스타 8년의 경력을 살려 호주 카페에서 영어 한 문장 구사만으로 취업 / 어디서든 살아남을 자세가 되어있음 / 사회운동가이자 한때 가수 지망생(t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