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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Jin Han Nov 01. 2020

너는 최고의 걸작품이야

뉴욕에도 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그날 수업은 키가 훤칠한 모델 출신의 선생님이 들어왔다. 러시아와 미국 혼혈이라고 들었다. 그는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시간에 사진 한 장을 맨 앞 학생에게 보여주었다. 자기 아들이라고 했다. '결혼을 했었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고, 들의 엄마와는 헤어졌다고 말했다. 


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는 그 선생님이 더 놀라웠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개방적인 나라라고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듣는 내가 더 당황스러운)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요즘 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 굳이 그런 정보를 말할 이유가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한 번은 에세이를 지도하던 선생님에게 첨삭을 받다가 한국 성형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쌍꺼풀 수술을 해요, 어떤 사람은 '쌍꺼풀은 필수, 코는 선택'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죠." 


그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더 이뻐질라고 하겠지요? 그게 이상한가요?"라는 내 대답에 그는 내게 절대로 쌍꺼풀 수술을 하지 말라고 했다. 할 생각도 없었지만, 절대로 하지 말 것은 무엇인가? 싶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물었다.


"그게 그렇게 충격인가요?" 그가 놀랍다고 했다. 각 사람마다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움을 왜 바꾸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최대한 이해를 시키기 위해 설명은 했지만, 그는 설득되지 않았다. 심지어 쌍꺼풀이 예쁘다는 미의 기준은 누가 세웠냐고 물었다. 아마도 서양 사람들 덕분이 아닐까.. 라며 웃어넘겼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까. 


2007년도만 해도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K-Pop이 유명세를 떨치지도 않았고, 지금 한국의 각양각색의 브랜드들이 넘치지도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여유가 있다면 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생각한다.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점점 국경의 경계가 없어졌다. 그때만 해도 미국 문화를 따라가고 싶은 인식이 있던 시기였고 선진국인 미국 문화가 이유불문 더 낫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미의 기준이 쌍꺼풀인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뉴욕 사람들의 삶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무조건 그들의 문화가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배워야 할 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비교 문화가 우리나라보다는 덜 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월감에 의한 인종차별의 문제와는 별개다.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삶의 작은 부분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분위기가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미국에도 치열한 경쟁이 있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사회 속에 자리 잡은 기저의 분위기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비교가 적다. 글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지만, 개개인과 대화를 하면서 친구가 되어보면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야기 한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기저에는 비교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낫다. 그러니 나도 저 사람처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 그래서 '나에겐 아이가 있어요. 결혼하지 않고 낳은 아이지만, 나는 그 아이를 돌보고 있고 행복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커플이 왜 아름답지 않은 거죠? 그것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는데...'라고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 나보다 더 낫거나 못하다 혹은 나의 인생이 실패다 혹은 성공이다라는 비교의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아이를 소개할 수 있었다. 쌍꺼풀이냐 외커플이냐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기에 그는 성형을 이해하지 못했다(물론 할리우드는 예외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지만, 이러한 순간들이 대화를 하면서 꽤 많았다. 


반면 한국은 좁은 나라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하고, 사회적 거리가 그만큼 좁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내가 뛰어나야 했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걸어야 하는 길을 비슷한 시기에 걷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았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비교 문화는 우리 문화 속 깊이 스며들어 있다.  '엄친아, 엄친딸', '금수저, 흙수저' 등의 용어를 보더라도 스스로 지금 제대로 잘 가고 있느냐를 바라보기보다 남들과 비교한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 문화가 얼마나 삶의 방향을 바꾸는지, 결국 가야 할 길을 돌아 돌아 가게 하는 지를, 행복해야 할 매 순간보다 결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랬다. 남들 가는 대학을 가기 위해 이유불문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했고, 남들 다니는 번듯한 직장을 다니기 위해 스펙을 쌓아왔다. 남들 걷는 길을 가는 게 나쁘지도, 틀리지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난 정확한 과녁을 향해 달렸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자신이 없다. 가끔 나와 맞지 않은 길을, 남들 보기 좋다는 이유로 선택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 그래서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내 삶을 비교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으로 소중하게 받은 내 선물 같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의 삶이 정확한 과녁을 향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살펴도 모자란 오늘이다. 그 오늘이 모여 내일이 되고, 내일이 모여 인생이 된다. 모두에겐 분명히 자신 만이 걸어가야 할 길이 있음을, 그것을 찾는 것이 더 의미 있다.


   


Dear J

J, 늦게라도 깨달았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이 파고든 비교는 절대로 너의 삶을 나아지게 하지도, 행복하게 하지도, 기쁘게 하지도 않으니까. 오히려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지. 모든 사람은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있어. 그건 절대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야. 굳이 비교하자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이거나 손가락보다 발가락이 더 중요해라는 말과 같지. 


우리 몸의 어느 장기 혹은 신체의 일부가 서로서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고 각자의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런 거야. 그래서 누군가가 너의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그에게 이야기해주렴. "나의 삶을 누구보다 사랑합니다"라고 말이야. 너는 누구보다 소중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래. 이웃을 사랑하며 살라고,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걸작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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