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인님을 알게 되었다. 조이님이 소개해주신 분인데 서로 에너지가 맞을 거 같다셔서 전화를 했는데 정수리부터 발가락까지 기가 찰랑찰랑 뚫리는 것 같다. 4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홈스쿨링을 하신다고 했다. 숲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일, 미국에서 부동산 일을 하시면서 자신의 일을 개척해 가는 시간들. 한 시간 통화하고 나서 다음 날 아 계속 이렇게 통화하고 지내면 좋겠다 싶었다. 막내가 6개월이라 바쁘시겠지 했는데 연락이 왔다. 서로 관심 있는 주제로 일주일에 한 번씩 통화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 너무 좋지요!
나는 오후 3시 30분, 정인님은 9시 30분에 대화를 나눈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는데 짜릿짜릿 10분 대화하 듯 시간이 가버린다. 우연히 만나 내 삶의 주제를 훑어지는 느낌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지 않아도 몇 줄의 대화로 그저 좋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내 마음과 몸이 일치하지 않아 1센티만 벌어진 틈에도 불안함과 무기력이 흘러나오는데, 일주일에 한 번 이 통화가 내게 너무나 찬란한 배움이다. 나의 살아온 시간과 고민을 들어주시면서도 흥분된 목소리로 온마음으로 박수 쳐주시는 게 감사하다.
어차피 된 거니까. 한번 확인하는 거야
미국 부동산 시험 보러 가는 길에 어차피 된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미 나는 된 사람인데 한번 확인하는 거다. 수능 본 사람이 이건 이랬고 저랬어요 문제를 다시 한번 훑어주듯이. 합격한 시험을 다시 한번 봐본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기 키우면서 공부를 충분히 할 시간이 없었는데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정말 마음가짐이 다다. 흥분해서 누워서 받다가 앉았다. 거울 앞에 내 얼굴이 빛나게 웃는다.
"맞아요 진짜 맞아요! 와 정말 멋있어요! 저도 하와이에 와 있는 거 이미 온 건데 차분하게 하나하나 다시 내가 봐보는 거라고 생각해야겠어요"
예전 3-4년 동안 꾸준히 마케터로 발표 연습을 할 때도 그랬다. 나는 어차피 잘하는 사람이 될 거라서 지금 연습하는 거야. 나는 어차피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할 텐데 어떤 말주머니가 어울리는지 알아보는 거야.
정말 그렇다. 오래전부터 나는 꿈인지 환영이지 상상인지 하는 이미지들을 본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아주 편하게 웃으면서 말을 하고 있고 사람들의 가슴이 설레어 그들을 발자국을 이끌어낸다. 내 표정도 무대의 조명도 사람들이 느끼는 두근거림도 다 느껴진다. 그런데 어떤 주제로 말을 하고 있는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21년 미국으로 이사했을 때도 이제는 마케팅 발표가 아니라 내 삶의 주제를 찾는다는 생각으로 다양하게 말자리를 만들었다. 지금 출산 후 발게벗져진 내면도, 살아보는 애씀도 말주머니가 되려고 온 게 아닐까. 잘 풀어나가는 연습, 또 막히고 꼬여도 괜찮다. 그것도 나만의 글과 말이 되니까.
10분을 쉬어도 1시간 쉬는 능력
육아를 하면서 가장 필요한 건 고요함, 쉼이다. 4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앞에서 꺼낼 말이 잘 없지만,.. 정인님은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능력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 나는 지금 10분 쉬지만 한 시간을 쉰 것처럼 아주 집중하는 거야. 지금 내 삶이 방송으로 나가는 거야. 거울 앞에서 스킨로션 바를 때도 인터뷰 하 듯이 한다셨다.
아 피부가 좋다고요? 실제로 보면 그 정도는 아닌데 저는 이렇게 관리를 한답니다 하면서
아 진짜 너무 좋다. 대화를 하면서 웃음이 실실 나오고 내 영혼이 반짝인다. 맞아 나도 연습을 하는 게 아닐까?
시간조차도 맘껏 쓰지 못한다며 불평했는데 이렇게 미지의 세계도 잘 살아보는 연습을 하는 게 아닐까. 어떻게 서든 삶의 주도권을 잡고 즐기는, 그렇게 느껴지지 못하는 시간에서도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는 연습. 이 시간이 쓰이고 내 딸에게 이십 년 뒤 보인다면 어떨까. 출산으로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 놀라서 방황했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마음을 헤아려가며 건강해지고 있단다. 솔직함을 모조리 짜낸 글들이 결국 나와 세상을 살리고 있단다라고 말해주려는 것 아닐까. 그러니 힘겨워했던 시간도 감사함이다. 널브러져 후회할 것만 같던, 내 탓으로 다 돌려버린 탓에 목이 죄어오던 시간도 괜찮다.
내게 왔어야 했던 시간이다. 이미 벌어질, 벌어진 일이 오는 거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내 고집이 또 충만히 성실하게 배워가는 시간이다.
통화를 하고 나면 각자가 스스로 해야할 일, 숙제들이 생긴다. 나는 꾸준히 기록하고 출판을 준비해 보는 것. 부족한데라는 핑계가 먼저 나오지만.. 이미 나올 책이다. 이미 나온 책을 다시 한번 쭉 훑어보고 있는거야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