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밖에서 따뜻한 햇살을 쬐면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사님이 다가오시더니 나의 첫째 녀석 이야기를 했다. 참고로 큰 딸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은 교회 청년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목사님은 저에게 흐뭇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첫째 따님은 어떻게 그렇게 표현을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늘 저를 볼 때마다 '감사합니다' 혹은 '오늘 말씀 너무 좋았어요'라고 얘기해 줘서 제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혹시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그러면서,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사한 줄 알면서도 또는 고마운 줄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면 좋았다고 느꼈지만 그런 것들을 잘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첫째 녀석은 또래 다른 친구들하고는 다르게 그런 마음들을 말로 잘 표현하는 것 같다고 칭찬하셨다. 역시 늘 같이 사는 부모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르게 보이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첫째 녀석은 늘 조그마한 메모지를 들고 다닌다. 나랑 카페를 가서 커피가 좋았거나 아니면 그 가게에 일하는 직원으로부터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받았거나 하면 늘 감사 메모를 남기는 것을 종종 봤다.
한 번은 물어봤다. 왜 그러는지. 딸은 그렇게 말했다.
아빠, 내가 감사하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잘 표현하잖아? 그러면 그 감사한 마음만큼 내 마음도 함께 좋아져. 아빠도 한번 해봐.
살아오면서 감사하다는 고맙다는 표현을 잘 못하고 살았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에게 더 못했다. 가족이니까 굳이 그런 식으로 말을 안 해도 다 알겠지라고 늘 생각하고 살았다. 엄마와 아버지에게 늘 받고 자랐으며 어른이 되고 나서도 늘 받기만 했는데 한 번도 고맙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작년 내 생일에 비로소 나는 아버지 엄마에게 처음으로 "나를 낳아줘서 감사해요"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이 뭐라고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당시 영상통화에서 아버지는 웃으셨고 엄마는 울었다. 부모가 되어보니 그 감정을 고스란히 이해가 되었다.
호주에 이민 와서 처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가 있다. 호주 사람들은 "Thank you"라는 것을 입에 달고 산다. 대화에서는 물론이고 이메일도 늘 "감사합니다"로 끝낸다. 더군다나 친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에서 볼키스와 허그는 너무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처음에 이런 문화에 익숙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이들의 감사에 대한 표현은 직장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카페에서도 식당에서도 공항에서도 해변에서도 늘 서로 먼저 "Thank you"를 한다.
감사는 표현을 해야 비로소 감사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그래야만 상대방에게 그 감정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교회 목사님도 나의 큰딸로부터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예배를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허무할까.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가 말해준 "감사했습니다"라는 그 표현 한 마다는 어쩌면 큰 힘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속으로 아무리 감사하고 고마움을 수백 번 아니 수만 번을 느끼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의 표정으로 그것도 아니면 본능적인 느낌으로 그 감사함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한 번의 표현이 수백 번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배웠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늘 하는 것이 생겼다. 예전에는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찾고 시간과 날씨를 체크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일어나자마자 새로운 하루에 "감사함"의 기도로 시작한다.
앞으로 나에게 몇 번의 하루가 더 주어질지 모른다. 그건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고 내가 알수 없고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굳이 알 수 없는 미래를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오늘 하루를 살게 해 준 것에 감사해하고 열심히 살자라고 이야기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바쁜 오전 일정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또 한 번 감사한다. 일부러 12시 반에 핸드폰 알람을 설정해 놓았다. 무사히 하루의 반이 지나갔음을 감사한다. 그리고 자기 전에 또 감사한다. 오늘도 아무 탈없이 하루가 갔고 이렇게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음에 감사한다.
우리는 솔직히 매일매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을 많이 하고 산다. 내일은 뭐 하지 그리고 다음 주는 뭘 해야 하지 그리고 다음 달에는 멀게는 6개월 뒤 아니면 몇 년 뒤에 올 일들까지 일부러 미리 당겨서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산다.
그런데 매일 오늘을 살고 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나서부터 걱정이 많이 사라졌다. 어떤 이들은 "걱정하지 마, 잘 될 거야"라는 말로 많이 위로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그 말보다 "매일매일 감사하고 살아봐"라고 권하고 싶다.
정확히 왠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하는 순간 내 몸에 있던 텐션 (긴장감)이 없어지고 대신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경험을 하곤한다. 감사하면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생기고 지나간 것들에 대한 후회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다가오곤 한다. 정말이다. 이건 경험담이다. 그래서 매일 감사하는 것을 권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루에 10번씩 감사해하면서 살아 보라고. 솔직히 아직 나는 그 정도까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만약 하루에 10번씩 감사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아마도 너무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머릿속이 복잡한 어느 날 린필드 동네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어느 골목길 코너를 돌아서 너무 이쁜 꽃이 있는 집 앞에서 멈추었다. 보기에도 이쁜 꽃이었지만 그 향기에 내 마음이 너무 힐링이 되었다. 사진으로 몇 장 남기고 싶어서 핸드폰으로 찍고 있는데 순간 그 집 마당 테라스에 앉아 있던 호주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나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꽃이 너무 이뻐서....."
할머니는 미소로 답변을 대신했다. 내 감사를 받아 주셨다, 내 마음이 더 좋아졌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지만 나의 표현으로 그 할머니도 행복했을 테고 나도 두배로 기쁜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한결 가벼웠다.
Russell Lane, Lindfield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