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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숲, 파괴의 속도

느림과 멸종 사이: 나무늘보의 이야기

by CAPRICORN

Fact
나무늘보는 다양한 생물들과의 공생 관계와 독특한 생존 전략 덕분에 긴 세월을 살아남아왔지만, 현재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의 생존은 정글이라는 서식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정글은 화전민 활동, 벌목, 도시화 등의 이유로 빠르게 파괴되고 있다. 발 빠른 동물들은 파괴된 지역을 피해 다른 정글로 이동할 수 있지만, 느린 움직임을 가진 나무늘보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서식지를 잃는 것은 곧 나무늘보의 생존 불가능을 의미한다.

Question
느린 움직임 때문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무늘보에게 우리는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공생 관계로 생존해 온 이 생물이 서식지를 잃게 된다면, 우리는 이들의 균형을 되돌릴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멸종 위기에 처한 나무늘보는 단순히 '약자'로 평가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 사회에 더 깊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슬로쓰는 원숭이에게 먹이를 빼앗겼다.

사실, 원숭이는 그 나뭇잎을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슬로쓰와 놀고 싶어서, 아니, 슬로쓰를 조금 놀리고 싶어서 그런 거다.

슬로쓰는 약간 짓궂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저 나뭇잎 두 개면 오늘도 충분하니까.

슬로쓰는 이 숲에서 나름 인기 있는 존재다.

그의 느린 움직임, 유유히 흔들리는 몸짓은 모든 동물들에게 평화로움을 가져다준다.

나방과 딱정벌레들은 그의 몸속에서 보금자리를 찾고,

녹조류와 곰팡이는 그의 털 위에서 집을 이룬다.

슬로쓰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작은 세상이다.

원숭이들은 슬로쓰를 바보처럼 놀리면서도, 속으로는 걱정 반, 애정 반이다.

그의 느릿느릿한 모습은 한심해 보이지만, 어쩐지 안쓰럽고 따뜻했다.

슬로쓰는 그저 웃으며 나뭇잎을 우물거릴 뿐이었다.

나뭇잎 한 장에 만족하는 이 존재를 보며, 누구도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슬로쓰는 약초나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무늘보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약초나무는 건강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나무다.

슬로쓰는 그 나무 덕분에 이 숲에서 가장 장수한 나무늘보였다.

그는 26살. 나무늘보들 사이에선 어른 중의 어른이다.

약초나무 덕분인지 그는 지금도 하루 한 번만 나뭇잎을 먹고도 건강하게 살아간다.

숲의 동물들은 이제 모두 그를 '할아버지’라 부른다.

하지만 어느 날, 숲은 평온을 잃었다.

정글 한쪽에서 나무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모두가 작은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나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슬로쓰는 그 모습을 나무 위에서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느린 움직임으로는 이 변화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숲의 동물들은 점점 자리를 잃고 흩어졌다.

나무들이 사라질수록 슬로쓰와 그의 집, 그의 몸속 세상도 위태로워졌다.

원숭이들은 멀리 떠나며 그들의 친구이자 이웃할아버지였던 슬로쓰를 바라보았다.


“헤이, 슬로쓰, 넌 괜찮을 거야. 항상 그랬잖아!”


원숭이들은 애써 웃으며 그렇게 떠났다.

슬로쓰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로쓰는 나뭇잎을 천천히 씹었다.

오늘도 충분했다.

털 속에 살던 나방과 곰팡이들, 딱정벌레들만이 그의 옆에 남았다.

내일 이 나무가 베일수도 있었다.

슬로쓰는 나무가 베이는 동시에 죽을 것이다.

그래도 슬로쓰는 털 속 공생자에게 속삭였다.


“너희들이 있어서 괜찮아.”

슬로쓰는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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