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Oct 14. 2020

듣고싶은 마음 하나

나의 사랑하는, 무너지는 세계






나는 누군가가 듣고싶어 하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곤 했어요.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래서.

살아가는 데 도움은 되지만, 잠을 청하기가 점점 미안해졌습니다.

누구를 위했지만 정작 나를 위하지는 못한 듯하여.


여백같은 시간을 좋아해요.

밤이 긴 날들을 좋아해요.


나에게 충분히 미안해 하고도 남는 밤엔 고마워할 일들을 떠올려도 좋으니.

모두가 로그아웃을 한 밤이 되어서야 나는 더듬더듬, 잊고 지냈던 마음을 이어붙여요.

누군가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제서야 하고픈 말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모든 것이 가라앉은 밤이 되어야만 샘솟는 오래되고 작은 언어의 곁에서.

나는 그런 밤을 붙들어 울곤 하였어요.


바다에 있을 떈, 모든 감각이 오직 나와 바다 사이에만 있어요. 

그래서 바다를 알고부터 나는 자주 몸을 던집니다.

파도의 사건 안에 휘말리고 나면 그간 내가 허투루 주워담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곤 하거든요.

가벼운 마음, 때묻고 간사한 언어와 사실은 못된 나의 기도같은 것들.

버려요. 파도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며, 버릴 수 있어요. 

그리고 부서져요. 하얗게. 나의 바람대로 나는 서 있어요.


밤을 기다리지 않아도, 마음 속 샘이 솟기를 바라지 않아도 나는

이제 하고싶고 듣고싶었던 말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말간 얼굴로 오늘도 파도에 익어가며

나는 서핑이라는 걸 합니다.


바다가 좋아요.

파도가 좋아요.

이건 나를 위한 말이었어요. 


오래 걸렸군요.

그래도 계속 던져 볼래요.

오늘은 어떤 말들을 발견하게 될까요.






이전 07화 나는 두세 번째 파도를 잡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