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검정고시를 보기로 했다. 살기 위해 도망쳤으면서, 그럴듯한 구실들을 늘어놓았다.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만드는 거라고. 사실은 벅찼다. 그래, 모든 게 부담스럽고 지겹고 벅찼다. 그런데도 스스로는 몰랐다. 나조차도 스스로를 세뇌해 댔으니 알 리가 있나.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다른 길을 가는 것뿐이라고, 조금 다른 길로 가면 어떠냐고, 그렇게 굉장히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사람인 마냥 자신을 속였다.
가짜 나를 앞에 내세우며 밝은 척했다. 밝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건지, 밝게 생활해야 그때의 내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오래 지나버린 그때의 나에 대한 기억은 가면을 쓰느라 썩어버린 감정을 묻어야 했던 나에게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함인지 아니면 부던히도 밝은 척을 하느라 정말로 내가 밝다고 착각해 버린 탓인지 기억이 다 낡아버려서 떠올릴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많이 웃었다. 많이 웃고 나면 허무했다. 그래서 더 많이 웃었다. 국가에서 검정고시를 보는 청소년들을 위해 마련한 공공기관에 나가며,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노래방에 가곤 하던 작은 일탈을 하며 놀던 시간들은 분명 행복했다. 그 순간에 최대한 행복하려고 노력했다. 그 이후엔 공허함만이 남으니까. 집에 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집에서 나오는 것조차 나에겐 힘든 일이었으니까. 아마 그때의 나도 아팠나 보다.
우울증이 온 것 같았다. 검정고시가 끝난 후 집에 처박혀 아무 데도 안 나가기 시작했다. 간단한 집안일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가 있었다. 사람이 폐인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니. 감정이 어딘가 죽어버린 것 같았다. 다그쳤다가 어르고 달랬다가 부모님은 어찌할 줄을 몰라하셨다.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 나 되게 많이 힘들었구나…. 나 너무 아등바등 살면서 무리하고 있었구나. 나까지 나를 사지로 내몰고 있었구나.
터져버렸다. 모든 감정의 전원이 툭 끊어져있던 것 같던 내가,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아무리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와도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엄마 품에서 나 실은 힘들었다고 말하곤 우는데, 끅끅거리며 낑낑대며 아무리 애를 써도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엄마는 소리를 왜 못 내냐며 속상한 듯 등을 두드렸다. 아주 어렸을 때 말고는 일생을 참아왔던 나였다. 울 때는 어떻게 소리 내더라. 잊고 말았다.
옥상에서 아빠에게 나조차 몰랐던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아빠는 콧물까지 흘리며 품 안에서 우는 나를 콧물 따위 상관 않으며 꼭 안아주셨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왜 말을 않았느냐고. 조금은 무뚝뚝한 우리 아빠. 그때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은 참 따듯하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위로는 참 눈물겹구나. 아픈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구나. 깨달았다. 어린 날 한 때의 방황이었다. 물론 어린 날도 방황도 끝은 아닐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