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살림 차리기 프로젝트 1.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삿짐을 모두 옮길 것인가. 아니면 새 살림(?)을 차릴 것인가?
우리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옷가지들과 의미 있는 물품을 제외하고 모두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이사 견적이 무려 1,400만 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컨테이너 선박이사인데 도착까지 약 3개월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대서 과감히 포기했다.
게다가 캐나다에서 거주할 집에 우리 짐이 딱 들어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셀프 출산 선물인 피아노가 끝끝내 아른거렸지만 진정으로 아끼며 사용해 줄 만한 새 주인에게 넘긴 후, 필수 품목들만 추려 항공편으로 부치기로 했다.
항공편으로 받을 짐은 3~4일이면 도착하는데 캐나다에서 이사 들어갈 집이 정해지지 않았던 한 달간, 정말 고맙게도 한국의 배송대행회사에서 무상으로 짐을 보관해 주었다.
한국에서 미리 캐나다 홈 렌트 사이트를 통해 접선한 캐내디언 호스트들은 우리가 캐나다에 도착한 이후로도 무응답이었고 에어비엔비 임시 숙소에서 머물던 한 달간 행정업무를 처리하며 물색해 보았으나
외국인을 선호하지 않는 것인지 모두가 감감무소식이었다. 집을 계약하는 아주 중대한 일인 만큼 그 어떤 사안보다 신중을 기해야 했으므로 집보다 집주인이 더 중요하다던 참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외국인들이 물밀듯 캐나다로 밀려들어와 이 작은 시골 동네의 집값도 천정부지로 올랐고 곳곳에 아파트가 위용을 드러내는 중이니.
“아파트는 싫지만… 집이 전혀 없어. 아파트 매니저에게라도 메시지를 보내볼까?”
탄식하며 내뱉은 질문에 짝꿍은 언제나 그렇듯
“그래. 렌트 기간이 보통 1년이니 1년만 살면 되지 뭐” 한다.
이 동네의 아파트는 대부분 신축이었고 3~5층 정도로 테라스가 구비된 콘도 형태로 지어진다. 하우스에 살던 습성 그대로를 아파트에 옮긴 것 같다. 집은 작아도 반드시 테라스를 내는 것을 보면.
영 내키지 않았지만 몇 군데 아파트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약 일주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한 곳에서 답이 왔다.
‘우리 아파트에 보여준 너의 관심에 지대한 고마움을 표해. 그런데 우리 아파트를 보러 오겠다는 고객들이 많아서 네가 보고 싶다고 해도 그게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어. 가능한 날짜가 생기면 조만간 다시 연락할게.
기다리겠니?
친애하는. OOO아파트로부터’
아파트로부터 퇴짜를 맞다니.
상실감을 넘어선 절망감이 몰려왔다.
더 좋은 집을 찾으리란 희망은 고이 접고 렌트 사이트 외에도 캐나다 관련 네이버 카페를 가입해 렌트 관련 글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젠 생존의 문제다!
#하우스, #렌트, #집 등 관련 키워드를 알림에 등록해 두고 며칠이 지났을까, #렌트 키워드로 네이버 카페 알림이 떴다.
[하우스 렌트합니다.]
- 학군이 좋아 한국인이 선호하는 동네임 (여기까지 와서 학군이라니… 쓴웃음이 났다.)
- 월 렌트비 $1,650
- 집주인이 한국인이라 소통이 용이
- 세입자는 한국인이어야 함
- 기타 등등, 사진들
- 연락처 123-456-7890
잴 것도 없이 우리는 당장에 튀어갔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란 것은 진작에 깨달았다. 게다가 집 계약서 작성과 집의 컨디션, 공과금, 쓰레기 처리 등에 대해 기존 세입자에게 많은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을 터였다.
한국에서도 2층 구조의 단독주택에 살았기 때문에 실내에 계단이 있는 듀플렉스 타입은 전혀 불편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뒷마당의 적당한 데크 공간도 썩 마음에 들었고 조용하고 고즈넉한 정경이 나를 종용하고 있었다.
방이 2개뿐이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리니 딱 2년만 살자,라고 짝꿍과 짧게 합의(아마도 반박불가한 확신에 찬 어투로 강요했을 것이다.) 한 후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보증금 명목으로 한 달간의 렌트비를 디파짓 하는 게 일반적인데 급히 계약서를 쓰느라 한국에서 생활비를 송금하지 않은 우리는 다음날까지 송금해 주기로 집주인과 합의를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 계좌에서 해외송금을 하려니 영업일 기준 3~4일이 걸린단다. 사정을 말하면 집주인이 기다려 줄 테지만 약속은 약속. 일단 계좌에 있는 돈과 현금을 끌어모았다. 그래도 한참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보관만 하겠다며 지갑에 넣어두었던 현금이 떠올랐다.
존경해 마지않는 외숙모님이 챙겨주셨던 미국 달러를 과감히 꺼내 캐나다 달러로 환전했다. 애정하는 직장 동료가 기도와 축복을 담아 챙겨준 '행운의 CA$100'까지 꺼냈다. 정산 후 아슬아슬하게 단 2달러만이 남았으니 정말이지 행운의 달러가 맞았다.
이렇게 글어모은 돈을 계좌에 입금했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e-transfer를 수행하기 위해 TD뱅크 앱을 열었다. 순간, 뱅킹 어카운트 개설을 위해 타임라인을 짰던 순간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한국처럼 아무 때나 은행을 방문하거나 모바일앱에서 손쉽게 계좌를 생성하고 해지하는 게 아니라 은행 지점에 사전 예약을 하고 카운슬러와 약 1시간가량 대면 상담을 통해 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다.
어딜 가나 챙겨야 하는 서류들이 많았기 때문에 두툼한 서류 뭉치는 나와 혼연일체였다. 배낭에 파일철을 넣어두고는 필요할 때마다 서류를 꺼내 보여주는 행위 자체가 나로서는 하나의 수행처럼 느껴졌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가운데, 한 동양인 가족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한 걸음씩 앞을 향해 내딛는 한 발 한 발 무거운 발걸음이.
이제 이 앱에서 e-transfer만 마치면 온전히 계약이 성사된다.
집주인으로부터 이메일주소를 전달받고 받는 이의 정보를 신중하게 타이핑한 후 몇 번이고 확인을 거쳐 디파짓을 송금했다.
드디어 우리의 안식처를 찾은 오늘. 만약 소주를 구할 수 있었다면 삼겹살에 소주를 꽤나 마셨을 것이다.
자, 그럼 이삿날에 맞춰 우리는 가구와 가전을 세팅해야 한다.
가전이야 코스코나 월마트, 캐내디언 타이어(종합몰)를 돌아다니며 최저가를 체크하면 됐는데 문제는 가구였다. 고풍스러우나 지나치게 올드한 느낌이었고 하나같이 사이즈가 컸다.
이 소파가 들어갈 리 만무한 손바닥만 한 거실에 걸맞은 가구는 찾기 어려울 성싶다. 또 무엇보다도 가격이 사악하다. 캐나다 물가도 코로나 이후 심각한 수준의 인플레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인 데다 물류와 유통에 취약한 시골이라 대도시보다 물가가 훨씬 높다.
몇 군데 가구점을 돌아보면서 좌절감을 맛본 우리는 다시금 희망을 고이 접고, 더 잴 것도 없이 가성비 갑 이케아 온라인을 뒤지기 시작했다. 작은 집에 알맞으면서도 저렴한 가격대 위주로.
짝꿍과 며칠 간의 고민을 거쳐 신중하게 장바구니를 채우고 배송 날짜를 선택하는데 이런… 가장 빨리 배송받을 수 있는 날짜가 일주일 뒤다.
“그럼 이삿날로부터 3일 뒤인데….”
“3일 정도는 미리 장만해 둔 애들 담요로 잠은 잘 수 있겠지.”
“여름이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 3일뿐인데 뭘... 3일만 버티면 돼.’
이케아 온라인에서 결제까지 마친 뒤, 스스로와 타협하고 있던 엄마의 속을 알리 없는 첫째가,
“여기 아무것도 없는데 엄마? 밥은 어디서 어떻게 먹어? 바닥에서 먹어? 어디에 앉아 있어? 근데 잠은 어디서 자?”라고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늘어놓는다.
나는 짐짓 자신감을 위장한 큰 목소리로 답했다.
“세 밤만 자면 돼. 우린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우리 일가족은 텅 빈 집에 몸만 덩그러니 들어가 차디찬 마룻바닥에 담요 한 겹을 깔고 절친이 꼭 필요할 거라며 부득불 챙겨준 1인용 전기담요를 이불 위에 가로로 깔고 첫날밤을 보냈다.
선견지명이 있던 친구에게 감사하다가도,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미리 알았으면 하나 더 챙겨주지, 되지도 않는 몹쓸 남 탓도 해 보면서, 캐나다 시골 멍크턴의 6월 초여름 밤은 정말 춥다는 것을 온몸에 스며드는 냉기로 확인하면서, 출산 이후 곧은 자세로는 잘 수 없던 내가 밤새도록 악몽과 사투를 벌이고서 맞이한 첫날 아침.
그래, 그럼에도 아침이 왔다. 새하얗게 지새운 새벽이 결국 아침에 자리를 내어준 지금, 첫째 딸에게 확신해 마지않던 ‘세 밤’을 견디지 못할 거란 것을 직감했다.
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직접 이케아로 달려가기로 결심한다. 침대만이라도, 아니 매트리스만이라도 당장 직접 픽업해 와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옆동네인 노바스코샤주의 핼리팩스까지 장장 3시간을 달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