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외국어를 쓰며 살아간다는 건
오늘 한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6개월간 다사다난했던 인턴을 마치고, 논문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몰아치던 날들이 지나가고 허무함이 몰려 들어온다. 계속 밀어붙이기만 하다가 갑자기 모든 게 사라진 기분이다. 조금은 특별하고 힘들었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나만 알던 날들이 꽁꽁 싸매 두었던 마음을 이제는 조금 풀어도 될 것 같다.
목요일 줌으로 회사에 발표를 마쳤다. 전체 팀 회의여서 37명이 참석했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한 시간. 그중 아마 반은 소리도 듣지 않고 화면도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참 이상했다. 사람들을 마주 보면서 반응을 보며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 얼굴이 보이고 피피티가 보이는 화면을 보며 끊임없이 말하려니. 독백 무대를 누비는 연기자가 된 기분이었다. 연기하는 게 맞다. 외국어를 쓴다는 건 연기자가 되는 거니까.
매번 외국어를 쓸 때마다 다른 텐션을 가진 사람이 된다. 어찌 되었든 다른 이가 쓰는 언어를 빌려 내가 뱉어내는 것이니까. 다른 언어를 쓸 때마다 나라는 사람이 표현하는 방식이 혹은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변하는 기분이 든다. 한국어로 말하는 목소리보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쓸 때 톤이 더 내려가고, 프랑스어를 쓸 때 가장 건방지게 변한다.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모두를 흡수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이 쓰는 언어를 흡수했다. 전에 책으로 배웠던, 수업시간에 배우는 방식으로 대화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걸 새롭게 다시 배워야 했다. 정중하게 문어체로 말하는 것들을 버리고, 친근하고 짧게 문장들을 만들어야 했다. 가장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받아들여야 했던 건 Verlan.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Verlan은 한 단어로 음절의 반전을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어 언어의 일종 인 구어이며 속어와 청소년 언어에서 일반적이라고 한다. 우리가 말을 줄여 쓰듯이 음절의 배치를 다르게 하는 게 하나의 구어로 자리 잡았다.
Ouf = fou : 미쳤어
c'est ouf 표현을 많이 쓴다. "미쳤네. 대박."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하도 많이들 말하는 데 처음엔 뭐 이리 달걀을 찾나 했다. (달걀은 프랑스어로 oeuf) 처음에 이 단어들을 알아듣는 것도 어려웠고 입에 붙지 않아 꽤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정중한 표현이 튀어나오지 않아 곤란했던 날들이 있다.
예를 들어, oui가 아닌 ouais를 맨날 쓴다던가. 한국어로 생각하면 응, 네 가 아닌 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책에서 혹은 수업에서 배운 건 oui였는데 사람들은 모두 ouais라고 말하고 있던 것이다. 입에 익히느라고 시간이 걸렸건만, 이제는 oui를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 졌다. 내가 몰랐던 나의 습관들을 친구들은 잡아내고 있었다.
교수가 출석 체크를 할 때, 모두들 반듯하게 대답한다.
"네, 여기요."
"저요."
정중하게. 한 순간 당연하다는 듯이 한 학생이 이렇게 대답한다.
"ouais ouais (늬예 늬예)"
그게 나였다.
친구들은 너무 웃기다고. 양아치 한 명이 있는 거냐고. 나름 두 번이나 성실하게 대답한 건데. 우리들 사이에서 재미난 일화가 되었다. 출석 부를 때다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친구들 덕에 oui라고 대답하게 되었다. 정신 차리고 고쳐야지 하면서도 뇌가 힘을 풀 때면, 여전히 반복되는 것들이 있다.
한 때 외국어를 대하는 감정이 어떤 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프랑스어는 애증의 언어였기에. 프랑스어를 쓰는 내가 좋지만 그 길은 험난하고,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그 깊이에 좌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수업이든, 일상이든, 면접이든 항상 내 발목을 잡아끄는 게 언어였다. 이걸 한국어로 했더라면 아니 영어로 했더라면 이렇게 내가 힘들진 않았을 텐데.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그게 언어를 탓할 껀 아니란 걸 알면서도 화살을 돌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를 버텨갈 수 없었던 순간들이었기에. 그렇게 마음껏 화살을 돌리다 보면 다시 나를 토닥일 수 있었다.
"아니야. 이렇게 성장하는 거지. 배워가는 과정이잖아."
프랑스어에 대한 애정이 있거나 영어를 사랑한다던가 하는 애틋한 감정은 없다. 외국어를 하는 내가 좋았을 뿐이다. 그게 멋있어 보이고 좋아 보였기에. 그 멋있는 모습에 도달하기 위한 길은 참으로 답답했다. 언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멍청하다는 시선을 받아야 했고, 내가 가진 걸 보여주기도 전에 이미 서류는 내쳐졌었고, 내가 뱉은 의견은 매번 재확인을 하고 나서야 받아들여졌다. 나의 언어는 힘이 없었다. 이게 내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서 인지. 동양인이어서 인지. 여성이어서 인지. 아니면 셋 다 인지는 모르겠다.
마침표 하나를 찍었지만, 그게 이런 날들이 끝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날들은 더 많은 좌절과 더 깊은 패배감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걸 안다. 힘이 없는 언어이기에 더 소리쳐야 하고 더 뱉어야 한다는 걸 안다. 힘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나를 더 단단히 해야 한다는 말도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쉽게 얻지 못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가져가는 걸 보는 건 쉽지 않다.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노력이라는 건 비교할 수 없는데.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프랑스어를 하면서 내가 마음에 새겼던 말이 있다.
나는 네 언어로 네가 할 수 없는 말을 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걸 네 언어로 하는 거지 결코 네가 되겠다는 건 아니다. 매번 흔들린다. 아무리 오랜 시간 다시 일어섰다고 해도, 온몸을 부딪혀 넘어지는 건 매번 아프다. 내가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때를 놓치지 않고 기어오른다. 그때마다 다시 되새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서사를 써내려 가는 중이라고.
이번 인턴은 나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프랑스어와 영어롤 오가며 혼란스러웠다. 현실은 혹독하고 차가웠다. 나의 마침표가 영어로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동료들이랑 프랑스어로 대화했기에 내가 영어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내가 더 잘하는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했기에. 사수도 칭찬 가득한 문자를 보냈고, 한 동료가 메신저로 보낸 말은 짜릿했다.
"미쳤다."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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