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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O 지나친 조각들 Mar 20. 2021

어머님은 말씀하셨지 참지 말고 받아쳐

내 이름이 싫었다

이름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놀림을 받았다. 나의 이름 석자보다 별명으로 불렸고, 집에 와서 이름을 바꿔달라고 펑펑 울며 떼쓰기도 왜 나는 아빠 성을 따라야 하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이름을 바꿔주는 대신에 누가 놀리고 괴롭히면 참지 말고 때려주라며 집에서 베개로 펀치 연습을 시켰다. 놀리고 괴롭히며 도망가는 애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고 치고받고 싸웠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같이 웃다가도 감정이 격해져 온몸으로 싸우기도 했다.



바둑 학원에 같이 다니던 아이가 놀리고 또 놀려서 하루는 바둑 가방으로 쳤고, 그 아이는 이마를 꼬메야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더 이상 놀리지 않았냐고 둘이 사이가 좋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그냥 다시 장난치며 놀리고 도망가고 치고받고 싸웠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장난친다고 문을 열지 않는 아이를 점퍼로 때렸다가 화가 난 아이는 바닥에 의자를 던졌고, 튕겨 올라 의자는 내 다리를 맞췄다. 앞에서 울기 싫어서 화장실 문 뒤에 숨어 눈물을 흘렸고,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내게 잘했다고. 앞에서 울지 않고 참 용감하다는 말을 했었다.



내 이름이 너무 싫었다. 나를 놀리는 저 놈들도 싫었고, 내 이름을 바꿔주지 않는 엄마 아빠도 미웠고, 저들을 내버려두는 어른들도 원망스러웠다. 장난치고 쫓아가고 싸우고 울고. 나는 왜 조용하고 고요한 삶을 살지 못하는 가. 어떤 어른들에게는 반응하지 않으면 흥미를 잃을 것이라는 말도 들었었지만, 그걸 어떻게 참고 사냐고 당하고만 있냐고. 매일 같이 싸우는 삶을 선택했었다.



목소리가 너무 커.

너무 나대.

공격적이야.

 

크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바꾸려고도 했었다. 조용히 있으려고도 했고,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사춘기는 원래 그런 거라고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어디서도 배우지 못했다. 어떻게 그 시기를 보냈냐고 하면 이것저것 해봤는데 도저히 안돼서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용감하다.
멋있다. 어떻게 그렇게 받아쳐.

지금은 멋지다는 말을 듣는다. 너무나도 바꾸고 싶었던 모습이 나를 보호하고 목소리를 드높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랑받고 싶었던 위치에서 반겨지지 않았던 모습들이 어른이 되니까 멋진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프랑스에서 살아남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도 참지 않는 성격이었다.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참으라고 가르치기보다는 괜찮다고 표현하라고 참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네 뒤에는 내가 있겠다고 언제나 기댈 곳이 필요하면 여기 있겠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네가 참아야 한다면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고 혹시 네가 말하고 싶다면 옆에서 손을 잡고 있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은 용기였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강요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이런 기다림의 상황에서 나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고 울고 좌절하며 컸고, 새로운 길을 궁금해하며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새로운 걸 한다는 건 일어서는 것보다 넘어지고 부딪히는 게 더 많다는 것이고, 못하는 내 모습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빠는 내가 딸이기에 보호라는 의도로 온실 속에 넣으려고 했던 적도 많다. 다만 세상 일은 의도대로 되는 게 없지 않은가. 나는 누구보다 더 크게 반항하고 싸우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되었다. 집 안에서 아빠가 갖는 권력을 향해 매일같이 싸우고 받아친 경험은 어디서든 당하고만 살지 않는다는 마음을 심었다. 더 발악하고 더 화를 내는 법을 배웠다.



프랑스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교실 안에서 교수. 아직까지 내가 마주한 사람들은 아무리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어릴 때 집 안에서 가장이 갖는 권력보다 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더 화를 낼 수도, 참지 않고 받아칠 수도 있었다. 내가 운이 좋았기에. 상황에 따라 내가 받는 위협에 따라 다른 게 당연하다. 꼭 받아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살아남으면, 살아있으면 그게 바로 용기다.



지금은 내 이름이 좋다. 어딜 가든 내 성은 Oh라고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이냐고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가장 쿨한 성이라며 자랑한다. 내 이름은 뜻도 있다고. "알아서 밝게 빛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프랑스 척척석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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