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획출판을 제안받다
출판사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들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 중 하나는 '투고 메일의 변화'였다. 누구에게나 첫인상이 중요하듯, 내 원고와 출판사의 관계자들이 만나게 될 첫 순간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더 흥미롭게, 이왕이면 더 눈에 띄게. 원고의 첫인상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원고의 제목이었고, 그것보다 더 먼저 만나게 될 순간은 아마 투고 메일이 담당자의 메일함에 도착했을 때 일 것이다. 그렇다면 투고 메일의 제목이 내 원고의 첫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냥 '여행 에세이 원고 투고합니다'라고 적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출판사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한 질문의 답은 NO였고 그랬다면 변화를 주어야만 했다. 소수의 사람들과만 나누기 위해 책을 쓰겠다고 다짐한 것이 아니었고, 이런 비유가 적당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하루에도 열 개, 스무 개씩 몰려드는 투고 원고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제목은 '패키지여행은 여행이 아니라고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한참을 앉아 고민을 했다. 어떤 제목을 선정하면 좋을까, 하고. 그리고 그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말이 있었다.
패키지여행은 여행이 아니지!
놀랍게도 내가 몽골 여행을 하며,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말이었다.
친구는 우리와의 몽골여행(패키지여행) 이전에, 다른 사람들과 몽골 승마 여행을 하고 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일행 중 한 사람이 우리의 여행을 두고 '남들 다 가는 곳 가서 남들 다 하는 거 하는 게 뭐가 재미있겠나, 그 여행 진짜 재미없겠다'라고 이야기했음을 그때 전해 들었다.
모르겠다, 그 사람은 얼마나 독특하고 신기한 여행들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었다.
남들이 다 가는 곳을 가는 게
왜 재미없고 시시한 일인가요?
종종 사람들은 장기 여행과 자유여행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패키지여행, 단기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는 소리들을 늘어놓는다. 글쎄, 남들이 다 가는 곳이라고 해도 내겐 처음 가는 곳이고 남들이 다 하는 여행이라고 해도 내겐 처음 하는 여행이다. 각자의 상황에 맞는 여행 스타일이 있는 법이고 상황에 맞춰 서로 다른 여행을 하는 것뿐 입에도 패키지여행은 일방적으로 폄하당하곤 했다.
원고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들고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저 말 때문이었다. 나의 패키지여행은 충분히 재미있었고 또 행복했음을 말하고 싶어서. 그렇다면, 내 원고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한 저 질문이 메일의 제목이 되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일 내용엔 메일 제목을 저렇게 붙인 이유와 간단한 원고 소개, 그리고 첨부파일들에 대한 소개를 담았다. 조금은 서툰 느낌을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여과 없이 담았다. 긴장되는 마음, 설레는 마음, 그리고 약간의 기대까지. 그게 출판사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가득 담아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음날이었다.
원고를 확인했다는 연락이 오고 한 세 시간쯤 지났을까,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반 기획 출판?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출판 형태에 잠시 당황했지만 당황하는 것만으로는 일이 해결이 되지 않았기에 여기저기 반 기획 출판에 대한 것들을 검색했다. 출판 시장이 어렵다고 이야기되는 요즘, 꽤 각광받고 있는 형태의 출판이라는 이야기들이 보였다. 저자와 출판사가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하되, 출판사에서 조금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서점으로의 유통과 홍보 등 나머지 것들은 기획 출판(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출판)과 동일하게 진행된다고 했다.
여행 에세이를 꽤 많이 출판하는 출판사였고, 몇몇 유명한 저자들의 저서 또한 가지고 있는 출판사였기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곳과 계약을 해야 할까, 아니면 기획 출판을 제안할 다른 출판사들을 더 찾아 보아야 할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이 출판사의 제안을 보류하기로 했다. 출판사 측에 양해를 구하자 출판사에서도 좀 더 고민해 보아도 괜찮다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그래,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투고한 첫날 이렇게 반응이 오고 있으니 그중 기획 출판을 제안할 출판사들도 분명히 있겠지.
분명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긍정적인 답변은 쉬이 만나볼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수십 번의 투고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