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놀리고 무시했던 친구들에게
12.7.23 두브로브니크 호스텔 방 안에서
안녕 얘들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 중 하나를 떠올리는데 갑자기 너희들이 떠올라서 이렇게 적어. 나는 너희들에게 놀림받고 나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싶지 않았어.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가시를 세워 냉정한 척 연기했지. 효과는 괜찮았어. 사람들이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으니까. 혼자가 편했어. 그런데 유쾌하고 친절한 사람들에게는 내 전략이 통하지 않았어. 그들은 내가 세운 벽을 단번에 녹여버렸지.
크로아티아에 갔을 때야. 같이 여행하던 친구는 먼저 한국으로 갔고 나만 혼자 남아 일정을 계속했지. 혼자 여행하긴 처음이라 긴장을 잔뜩 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냥 하면 되는 것들도 그땐 왜 그렇게 어렵던지. 그런데 먼저 웃으며 다가오는 크로아티아 사람들 덕분에 긴장은 금세 풀렸고 마음이 풍족했어.
자그레브라는 도시에서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산책하던 남자 하나가 방긋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어. 나는 수줍어서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속으로는 고마웠어. 공원을 걷는데 사람들이 긴 테이블에 모여서 부채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구경하는데 금발의 여자가 나를 보고 웃으면서 나에게 이리 와서 같이 하자며 손짓했어. 나는 또 수줍어서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고마웠어. 아름다운 숲과 맑은 호수로 유명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구경하고 그날 바로 바닷가 마을인 자다르로 넘어가야 하는데 길을 못 찾아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마지막 버스가 저 앞에서 막 출발하려고 했어. 내가 다급하게 뛰어가는데 버스 쪽에 가까이 있던 현지인이 나를 보고는 버스를 멈춰 세웠어. 그 사람은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어. 겨우 자다르에 도착했어. 버스터미널에서 숙소로 가려니 길이 너무 미로 같아서 한참을 헤매고 있었어. 서서 지도를 보고 있는데 눈동자가 파랗다 못해 속눈썹까지 파란 아주머니가 손짓을 하며 몇십 분 동안 크로아티아어로 길을 알려주었어.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척을 했고 계속 '땡큐 땡큐'를 외쳤어. 결국 무작정 걷다 보니 숙소가 나왔고 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볼 수 있었어. 길은 내 힘으로 찾았지만 그 아주머니의 마음이 고마웠어. 항구도시 스플리트에서는 혼자 해수욕을 하는데 호기심 많은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며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 했어. 흐바르 섬에서는 외벽이 새하얀 작고 예쁜 카페에 들러서 케이크 한 조각을 시켰는데 카페 주인이 오늘 날씨 정말 좋다며 야외 자리를 만들어주고 극진히 대접해주었어. 마지막 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선 호스텔 방 안에 큰 벌이 들어와서 내 손을 쏘았는데 푸근한 주인아저씨가 벌도 퇴치해주고 내 손을 냉동실에 갖다 대어 붓기를 빼주고 연고도 발라줬어.
너희들이 나에게 가르쳐 준 건 폭력과 무시, 하대 같은 것이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푸른 눈의 사람들은 관심과 존중, 친절을 가르쳐 주었어. 어린 날의 장난 같은 거라 아마 너희들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날 거야. 나도 너희들에게 배운 대로 누군가에게 분명 큰 상처를 주었을 거야. 그래도 다행히 내 주변엔 사랑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너희들 곁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길 바랄게. 그들에게서 존중하는 법을 배웠길 바랄게. 힘이 더 센 사람에게 굴복당하고 하대 받으며 크지 않았길 바랄게. 우리가 저지른 폭력은 반성하고 받은 친절은 베풀도록 하자.
2021.10.10
강자에게 더 강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