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용운 Oct 17. 2022

나에겐 아무것도 없으니 죽어야 한다고 말했던 J님에게

2018.5.30 나미비아 데드블레이에서

 안녕하세요 J님! 어떻게 지내시는지 정말 궁금해요. 2년 반 넘게 J님과 마음속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초반에 J님은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나에게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가족에게 문젯거리다. 친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후로 있어본 적이 없다. 일도 못하니 직장도 못 구할 것이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 나는 죽어야 한다. 제가 명상 상태를 유도했을 때 J님은 자신의 상태를 사막으로 표현했어요. 오아시스도 없고 생물도 없는 사막. J님에게 심미안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저는 그 이미지를 같이 느끼면서 나미비아의 데드블레이라는 곳이 생각난다고 했어요. 제가 사진을 보여주면서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멋진 곳이라고 했어요. J님도 처음 보는 그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사막 여우 하나 살았으면 좋겠다는 J님 다운 말도 했어요.



 J님! 제가 실제로 그곳에 갔었답니다. 아프리카 여행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어요. 먼저 '빅 대디'라는 사구에 올랐어요. 엄청 큰 모래 언덕인데 발이 푹푹 빠져서 오르기 쉽지 않았어요. 발에 닿는 모래 촉감이 좋았어요. 너무 높아서 끝까지 오르진 못하고 중간에 가파른 경사를 뛰면서 구르면서 내려왔어요. 그랬더니 '데드블레이'가 눈앞에 나타났어요. 너무 건조해서 땅이 마르고 그곳에 살던 나무가 죽은 채로 비틀려 있는 곳이에요. 어떤 생물도 살지 않는다고 해요. 하나의 초현실 그림 작품 같은 풍경이었어요. 이곳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어요. 다 구경하고 이곳을 빠져나오는데 모래 속에 새싹 하나를 발견했어요.



 J님! 사막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세요. 사막을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막의 촉감과 건조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깔깔거리며 모래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삭막한 모습이 멋있다며 사진 찍는 사람들도 있어요. 말라 비틀어진 나무가 있어요. 파란 하늘이 있어요. 작은 새싹이 있어요. 살아있는 것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지금 J님의 마음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어쩌면 정말 사막 여우 하나 살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죠.   



2022.10.15

이전 19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났던 U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