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레테 클래식 Feb 10. 2024

불멸의 전사들

사랑하기 위하여

1. Read Me


불멸의 전사들(아레테 클래식스)


공허한 개념 속에

박제된 영혼들


그들도 한때는

용맹한 영웅들


무수한 말들은

존재자의 절규


슬픈 운명 앞에 쓰러졌던

불멸의 아킬레우스


시뻘겋고 뜨거운

핏빛 외침


나도 한때 살았었다고

나는 한때 사랑했다고

나는 지금 살고싶다고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앉고 슬퍼하는 아킬레우스 개빈 해밀턴, 1760~1763, 스코틀랜드 내셔널 스코틀랜드 갤러리>



2. Note Me


하이데거는 자신의 작품 존재와 시간에서 그동안 전통적 철학인 연구해온 존재론의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과거 서양철학의 존재론이 존재 자체를 존재(Being)와 존재자(beings)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존재(Being)라는 개념은 명사적 개념이다. 이것은 ‘신이 존재한다’, ‘인간이 존재한다’, ‘집이 존재한다’와 같이 어떤 행위를 지칭하는 동사(존재하다)의 개념적 주체로 간주하는 것은 전통적 존재론의 핵심이다. 전통적 존재론은 주체와 동사의 설명을 통해 주체를 구획할 수 있고 그런 개념은 소유 가능한 개념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신이나, 인간, 집 등은 단지 개념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 주장한다. 현실 세계에는 신, 인간, 집 등의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자는 명사개념으로 구획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또 대상화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경제적 가치나 도덕적 가치로 환원할 수도 없기 때문에 철저히 비소유적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존재적(ontical) 사유와 존재자론적(ontological) 사유를 엄격히 분리한다. 이것을 까라마조프 씨의 형제들 속 사랑관과 대비해 보면 이렇다. 첫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악마의 유혹은 물질과 권력과 세계를 소유할 수 있다는 존재적 유혹이었고, 그 시험을 이겨낸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인 가나의 잔치는 철저한 비소유이며 가난한 이웃들을 연민한 '존재자론적 사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전읽기]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지옥이란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것>​

이전 08화 죄와 벌_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