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로 우리 사회 다시 읽기
죄와 벌: 침묵의 동조자들
1. 국정기조, 마약과의 전쟁?
모든 정권은 그 시작과 함께 구정운영의 기조를 세운다. 내가 기억하는 최근 대통령들의 정책 목표는 대충 이렇다. 경제부흥: 4대강 운하(이명박 정부), 햇볕정책(김대중 정부), 국민참여(노무현 정부), 한반도평화(문재인 정부)등 국가 전반의 발전을 아우르는 큰 목표를 제시했다.(이중 박근혜 정부는 국정농단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제외했다.) 문민화된 시절의 대통령들은 하나 같이 동북아 평화나 균형자, 혹은 경제 발전 등을 국정의 중요한 목표로 세우고 세부적인 정책 목표를 구상했다. 그러나 현 정권의 국정 기조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물론 한반도 평화나 경제 발전 등을 국정의 중요한 목표로 상정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몇몇 현상들은 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하겠다. 그 중 하나가 마약 범죄에 대한 것이다. 작년 4월 국무회의 당시 대통령이 했던 발언을 직접 살펴보자.
“어느 순간부터 정부 당국의 방치로 마약이 국민의 건강과 정신을 황폐화시킬 뿐 아니라 청소년의 꿈과 희망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국가를 좀먹는 마약 범죄를 뿌리 뽑아야 할 것입니다.”
<2023.4.18. 제16회 국무회의>
위 내용은 정부 당국(아마 전 정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이 마약 범죄를 방치했으며 이로 인해 국민의 건강과 정신, 나아가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나서 마약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내용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정부는 언제부터 마약 수사에 미온적이었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가 너무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마약 범죄에 노출되었기에 공권력이 총동원되어 마약 범죄를 소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의 계획에 따른 시행된 삼청교육대가 떠올랐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 위원장이었던 전두환은 <삼청계획 5호>에 따라 삼청교육대를 설치한다. 1980년 8월 4일 신군부는 <계엄 포고 13호>를 발령해 대대적인 폭력배 소탕 작전을 실시한다. 삼청교육대의 '삼청'은 당시 국보위가 위치한 삼청삼청동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삼청교육대는 각종 범죄자 외에도 무고한 시민까지 수용하여 불법적인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당시 공영매체는 ‘그늘진 과거로 사회의 지탄을 받던 불량 폭력배들이 중부전선에 있는 삼청교육대에서 새로운 인생의 각오를 다진다’며 삼청교육대의 순기능을 홍보하기에 바빴다. 정보기관, 군, 경찰, 검찰을 포함한 공권력과 심지어 교육부까지 나서(당시 교육부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학교별로 각출해서 징집을 강행하기도 했다) 삼청교육대가 징집한 순화 교육 대상자는 약 4만명으로 추산된다. 4주간 진행된 순화 교육에서 폭력 조직원을 비롯한 전과자들은 기간병의 삼엄한 감시 아래 가혹한 육체 훈련을 강행했다. 교육생 중 하나는 당시 방소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배우지 못한 탓으로 구타와 욕을 해가면서 나쁜 짓만 일삼아왔지만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돼 대단히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수용자들은 고문에 가까운 육체훈련은 물론 진압봉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군용차에 묶여 끌려가는 반인륜적인 가혹행위를 당했고 탈출을 시도하면 가차없이 사살당했다. 많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무죄와 억울함을 호소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나는 이번 정권의 국정기조가 삼청교육대의 만행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 최고 권력자의 권력 의지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삼청교육대 사건은 숙고될 필요가 있다.
2. 성실한 동조자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표가 난 직후인 2023년 5월 23일 대검찰청은 마약조직범죄과를 마약조직범죄부로 확대 개편했다. 비슷한 시기인 2023년 4월 12일 경찰청장은 생활 속까지 파고든 마약류 범죄 척결을 위한 총력 대응을 위해 2023년 마약 수사 특진자 수를 전년 대비 6배 증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찰청장은 조직적인 마약 제조, 유통 사범을 일망타진하는 경우 해당 수사팀 전체를 특진시키는 이례적인 방안을 발표한다. 수사 이외에도 첨보 제공과 예방, 홍보활동 등 우수 사례도 공적을 투명하게 평가하여 특진을 비롯한 대대적인 포상과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연쇄살인범의 검거에도 수사팀 전체가 특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는 사상 초유의 정책 발표이고, 파격적인 공적 포상 계획이다.
나는 한때 장교로 군복무를 한 경험이 있다. 군인을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특진은 경계작전에서 적을 발견, 포획, 사살 등의 전공을 인정받거나, 실전에 참전해 이와 같은 전과를 올린 이들에게 주어지는 매우 이례적인 포상이다. 군인 뿐 아니라, 대부부의 공직자들에게 1계급 특진은 출세를 보장하는 명예의 상징과도 같다. 한번의 특진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특진자의 영웅적 서사는 평생 그를 따라다니는 후광으로 작용한다. 인사고과에서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은 공적이나 상훈이다. 근무 평정이나 보직도 중요하지만 남다른 공적이나 상훈은 탄탄대로를 열어주는 프리패스나 다름 없다. 이와 관련해 현직 경찰들의 반응은 어떨까? MBC Pd 수첩의 방영 내용 중 일선 경찰들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해 보자.
전반적으로 이제 마약 수사가 예전에는 경찰 내부에서는 정말 등한시됐었던 그런 마약수사거든요. 근데 이 정권 들어오면서 마약 수사 중요도를 많이 높여놨어요. 마약 수사의 비중이라든가 특진 공약이라든가 이런 것도 많이 경찰청에서 하달을 하고 하니까 약간 과열된 부분은 있어요.
<현직 경찰 A>
경찰에 과도하게 좀 특진을 많이 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쨌든 무리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건 아닌가.....일반인 10명 마약 투약한 것보다 진짜 유명한 연예인 한 명 투약했다는 게 언론에서 이슈화 시키기는 좋다는 거죠
<현직 경찰 C씨>
지금 마약 수사는 최고통수권자의 주요 관심사항이다. 특진 여부를 떠나 권력자의 관심은 관련된 모든 공공의 역량을 집중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오로지 수사상의 실적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면 비정상적인 논리가 작동된다. 평소 관심이 없었고, 하물며 등한시 되었던 과제가 지상 최대의 과제로 등장한다. 이 이상한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스타가 되고, 누군가는 희생양이 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과정이 의심스럽다. 내 삶 주변에 마약에 의해 정신이 황폐화된 지인들이 있었나?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마약 때문에 꿈과 희망을 파괴당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진다.
3. 죄와 벌을 대하는 국가의 책임과 역할?
통치당하는 것 그것은 감시받고 염탐당하고 지도받고 규제당하고 감금당하고 교화당하고 통제당하고 평가받고 감청당하고 검열받고 명령을 받는 것이다. 자격도 학문도 덕성도 없는 자들에게
<소유란 무엇인가, 푸르동>
최근 독서 중에 읽은 문구에 크게 감명을 받아 큰아이에게 보여줬다. 아들은 분개하며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해 줬다.
"맞아요! 왜 자격도, 학문도, 덕성도 없는 사람들이 전문가들이 반대하는 입시제도 변화를 강행하는 걸까요? 저희는 너무 불안해요. 아빠, 저, 공부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어요
자신도 '천근만근'인 삶의 무게를 버티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갔지만, 정당방위로 살인을 저지르고 억척 같이 자신의 삶을 견디며 살아온 한 젊은 여성을 위로하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부서지기 쉬운 평범한 인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 속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다만,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을 때 내게 찾아와 작은 위로가 되어 준 상처받은 [나의 아저씨]를 기억해 본다.
‘내가 나의 과거를 잊고 싶어 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과거도 잊어주려고 하는 게 인간 아닙니까’
<tvN 나의 아저씨 중>
라고 어린 지안의 입장을 항변해 주던 대사에서 까마조프가의 막내 [알료샤]의 환영을 만나게 된다.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로해 주던 그의 따뜻한 미소가 생각나 더 마음이 아려온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가 주장 했던 초인 사상은 제레미 벤담의 양적공리주의에 대한 맹신에서 초래되었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가치를 수량화 해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한 제레미 벤담은 이익이 가지고 있는 양적 가치에 집중한 나머지 가치의 질적 다양성을 간관했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려 시도한 사상가가 있으니 바로 제레미 벤담의 제자를 자처했던 존 스튜어트 밀이다. <자유론>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정부가 개인의 노력과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고 촉진시키는 활동이라고 할지라도, 그 정도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개개인과 집단들의 활동과 역량을 이끌어내는 대신에, 그들이 해야 할 활동들을 정부 자신이 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조언해주며 때로는 경고를 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잘해 나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반대로 그들에게 족쇄를 채워서 그런 상태에서 일하게 하거나, 그들을 옆에 세워두고서 그들의 일을 직접 나서서 할 때 폐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가치는 결국 그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가치다. 따라서 국가가 여러 가지 일들에서 좀 더 효율적인 행정 처리나 많은 경험을 통해 실무 능력이 뛰어난 관료들을 선호해서, 국민 개개인들을 정신적으로 발전시켜서 그들의 정신적인 능력이 폭넓어지고 수준이 높아졌을 때에 그것이 가져다 줄 이익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될까? ... 그런 국가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 국민을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는 완벽한 기계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렇게 부드럽게 잘 돌아가는 기계로 만들기 위해서 국민에게서 활력을 없애버렸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런 국민이 전혀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민음사>
나는 이 지점에서 똑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밀은 정부는 개인의 노력과 발전을 촉진시키는 활동이라 할지라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공공의 복리를 위해 개인은 희생할 수 있다는 기존 양적 공리주의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오늘 이 배우의 죄를 모른 채 하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사회가 요구하는 법적 체계 내에서 존재하겠다는 전제가 필수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그 법치가 개인의 인권과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해 주는 한도 내에서 작동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은 수사 당국의 무리한 수사, 언론의 취재 관행, 대중들의 관음증과 과도한 비난이 함께 만들어낸 인격적 살인은 아니었을까?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나는 범죄를 저질러 본적이 없지만, 내 양심에 손을 얹고 죄 없다 얘기하지 못하겠다. 이 답도 없는 질문에 집착하는 이유는 나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애정 하던 배우의 죽음이 그의 죄에 상응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당하는 한 인생의 존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도 어디에서인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을 누군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대신 싸워달라고.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신원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