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출근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막내 딸 아이가 서울까지 출근을 하는데 7시에는 광역직행버스를 타야 한다. 오늘 많이 춥다고 했는데, 혼잣말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여전히 가슴이 꽉 막혀있고 숨쉬기가 힘들다. 그래도 나를 통제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막내딸 버스정류장까지만 자동차로 태워주기로 했다.
다 큰 아이들이지만 아빠가 얼마나 심각하게 아픈지 잘 모른다. 이 백수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통신비 이제는 자기가 내고 신용카드도 쓰지 말아달라고 하니 언제부터 그렇게 하면 되냐고, 따지듯 묻는다. 그리고 언제부터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냐고 묻는다. 사실 그 말을 듣고 나와 아내는 너무 서운했었다.
하지만 그건 교육 잘못 시킨 우리 잘못이고, 아이들이 아직 철이 안 든 탓이다. 미워할 수는 없다.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깨닫게 되는 때가 있으리. 시커먼 밤 같은 어둠을 뚫고 딸을 버스정류장 앞에 내려다주고 돌아온다.
아내가 아침 먹을 거냐며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내 밥만 차려준다. 자기는 혼자 고구마를 먹었단다. 아니, 나랑 같이 먹어야지. 하며 혼자 투정을 한다.
아내는 내가 밥을 먹을 동안 출근준비를 하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한다. 참 멋진 아침 습관이다. 날마다 나를 출근 보내고 나서 이렇게 멋진 아침을 엮었구나 생각하니 내가 대단한 아내와 산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 전 아내가 묻는다. 오늘은 좀 어때? 어떤 대답을 기대했을까, 어떤 마음으로 물어볼까.
사실 이런 질문이 제일 곤란하다. 오늘은 좀 어때?
얼마나 솔직하게 대답을 해야할까. 얼마나 대충 대답을 해야할까.
음. 어제 나쁜 수준이 100이라면 오늘은 80 정도야.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좋다는 수준을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크게 실망을 한다.
아직, 많이 안 좋네.
나는 서둘러 변명을 한다. 아냐아냐. 한 60 수준이야. 많이 좋아졌어.
치. 거짓말.
오늘은 내가 당신 출근 배웅을 하네. 하면서 아내를 껴안아준다. 잘 다녀와. 고생이다. 화이팅.
아내는 활짝 웃으며, 한의원 꼭 가. 하고 지령을 내린다.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속이 탈까. 아내도 최근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나 때문이다.
아내가 떠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한의원을 가기로 한다.
어깨도 아프고 하지만 그런 건 얘기하지 않고 공황장애만 치료받기로 했다. 한의사가 묻는다. 토요일 오고 오늘 오셨는데 어떠신가요.
별 차이는 못 느꼈습니다. 최근 삼사일 계속 안 좋았습니다.
네. 그럼 지난 번처럼 머리, 손, 발에 침을 놓겠습니다. 남자 한의사인데 참 조용조용 침착하게 말을 하고 침을 놓는다. 나는 침 맞는 걸 좀 무서워한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맞는 침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다. 참자. 참자. 이번에는 손가락에 침을 놓을 때 좀 많이 아팠다. 배에 올려놓은 쑥뜸 향과 온기가 전신을 나른하게 해준다.
8천원에 침을 맞고 뜸 치료까지 받으니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나는 생각이 든다.
갔다 오니 어느새 11시다. 이 글을 쓰니 어느새 12시다. 오늘 백수 첫날 오전은 이렇게 지나간다.
집에 오니 아침 햇살이 너무 좋아 침대에 눕지 않았다. Tv도 켜지 않았다. 대신 잔잔한 첼로 음악을 거실 가득 틀어놓고 이렇게 휴대폰으로 일기를 쓴다.
직장에서는 벌써 점심시간이겠구나. 햇살이 참 좋다. 오후에는 아무 일도 없이 잘 지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