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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헌책 수집가의 이야기 <아무튼, 헌책>

by 봄부신 날 Feb 15. 2025


[아무튼, 헌책] 오경철

한줄평 : 진정 헌책 수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유쾌한 헌책 이야기



브런치 글 이미지 1





헌책방, 고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수원 남문의 "오복서점"도 2023년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아주대 인근 법원 사거리의 "헌책방"도 진작에 문을 닫았다. 작년인가 당근 중고 거래 플랫폼에 중고책이 전 장르를 불문하고 계속 올라와 몇 번 거래를 한 적이 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다. 얼마나 책을 좋아하셨기에 이렇게 좋은 책들이 많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헌책방을 했었노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법원 사거리에 헌책방이 있었는데 없어져서 아쉽다,고 했더니, 반색을 하면서 자기가 거기서 헌책방을 운영한 사람이라고 했다. 폐업하면서 처분할 거 처분하고 버릴 수 없는 책들을 집으로 가져왔는데, 시골로 이사가게 되어 아깝지만 당근에서 처분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 분에게서 서너 번 각 장르별로 많은 책을 구입했다.

이제 수원 인근에서는 알라딘 중고서점 아닌 예전 헌책방은 찾아보기 힘들다. 화성에 "고구마"라고 창고형 매장이 있다고 했는데 몇 번 가보려 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가보질 못했다.

이 책의 저자 오경철은 문학동네 편집장을 하면서 청년 시절부터 헌책에 매료되어 헌책방 순례를 해 온 알짜배기 헌책 수집가다. 그는 지금도 가끔 헌책방에 가긴 하지만 예전의 그런 헌책방은 모두 사라지고 창고형으로 바뀌었다고 안타까워 한다. 이제는 헌책을 찾는 사람들도 집에서 모두 컴퓨터로 주문하고 있다고 씁쓸해한다. 좁은 공간에 가득 채워진 헌책 냄새를 맡으며 주인이 내주는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책을 고르는 재미는 이제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다.

헌책을 찾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헌책방의 문화적 가치와 그 공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소박하고 다양한 즐거움을 예찬하는 열성적인 순례자들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대부분 - 물론 아직도 헌책을 구경하고 사들이는 일 자체는 좋아한다는 전제 하에 - 터치나 클릭을 하고 있다. (176)

나도 헌책 수집에 취미를 가지려고 시도를 몇 번 해보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초판본을 모으거나 희귀한 서적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그에 따른 시장도 없는 것 같아서 포기했었다.

해외 고서점 관련 책들은 여럿 나와 있고 나도 꽤 여러 권 읽었다. 이야기들을 책에서 읽으면 두 눈이 말똥말똥 빛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 아, 우리나라도 이런 문화가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그런 사람이었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고 시장이 생기는 법인데 우리나라는 시장을 형성하기에는 수요가 너무 적다. 정말 쥐꼬리만큼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죄다 문을 닫고 인터넷 판매로 갈아타는 것이리라.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의 저자가 사랑했던 헌책 수집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많이 행복했다. 아, 이 작가는 이런 제목을 달고 책을 쓸 만 하다.

새 책을 주문할 때 내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 나는 혼자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 이 사람도 나와 같구나.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하며 자제하려고 애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늘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사람이 '헌책방'이라는 '장소'에 중독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무렵 처음 알았다. (50)

나도 청년 시절에는 길을 가다가 책방만 보이면 무조건 문을 열고 들어가 그날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털어 책을 사곤 했다. 그러면 그날은 밥을 굶거나 아주 아주 먼 거리를 그냥 걸어서 집엘 가곤 했다.

책을 좋아해서 책을 사지만 그도 돈이 궁해지면 책을 팔아 현금을 손에 쥐었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 나 역시 가난해지고 또 가난해져서 정말 당장 내일을 보장할 수 없을 때 거대한 책장과 그 속에 무질서하게 꽂혀 있는 책을 보며 계산을 해 보았다. 저 책들, 한 권에 만 원씩만 계산해도 수천만 원이구나. 저 책을 안 사고 돈으로 모았다면 나는 지금과 다른 모습일까? 물론 몇 번을 생각해봐도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 것이다. 그때는 책을 사는 게 남는 거였고, 지금은 또 책을 팔아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슬픈 마음을 감추고 팔 수 있는 책을 골라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가서 쥐꼬리만한 현금을 손에 쥐기도 했다.

저자도 그랬다. 그도 가끔 책을 팔아 손에 돈을 쥐고 눈알을 굴리던 때가 있었다. 그는 책을 팔면 즉시 실천할 것으로 다시 그곳에서 다른 책을 사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거나 책을 팔고 손에 쥔 돈을 즉각 실천하기에 바람직한 일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다른 책을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술을 사 마시는 것이다. 물론 순서대로 둘 다 하면 가장 좋다. 팔아버린 책들은 그래야 잊는 법이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책을 다시 사느라 책을 팔아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하기도 했다. 그 범위 안에서 책을 산 기억은 없다. 항상 더 많은 책을 샀다. 조선시대 책벌레들도 그랬나보다. 책 읽는 사람들은 왜 한결같이 가난한 것일까.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이 책읽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여기 박제가와 유득공의 이야기도 슬프다.

조선 최고의 책벌레 박제가가 굶주림에 시달리다 <맹자>를 팔아서 밥을 해 먹고 유득공에게 달려갔다. 사연을 듣더니 역시 굶주렸던 유득공은 <좌씨전>을 팔아 그에게 술을 사 주었다. (67)

저자의 책중독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나도 책에 관해서라면 정말 어디 내어 놓아도 탁월한 수준이라 인정을 받는데, 그의 글을 읽으니 나는 정말 새발의 피에도 모자라는 수준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형님, 한 수 가르쳐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대단한 분이다.

나의 대출 가능 권수는 0일 때가 태반이다. 날마다 어떤 책은 반납하고 어떤 책은 빌려 온다. 조급한 마음과 달리 대부분은 통독하지 못하고 반납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계속 책을 빌려다놓지 않으면 불안하다. 도서관에 가면 그때그때 읽고 싶은,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읽으려고 했는데 깜빡한, 혹은 회원들이 신청해서 신착 도서 서가에 꽂힌 책들이 항상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110)

그는 책과 분리불안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책이 없으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불안한 증세, 책을 빌려 놓지 않으면 누군가 그 책을 빌려갈 것 같은 불안한 마음. 이 정도면 정말 중증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누굴 탓하랴.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감정이입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작고 앙증맞은 이 책이 내게 이토록 높은 몰입도를 선물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읽지 않았거나 읽지 못한 책들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끊임없이 책을 사들임으로써 읽지 않았거나 읽지 못한 책들의 수를 전혀 줄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아주 많다. 단지 그들은 그 사실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뿐이다. (114)

우리나라에 이런 혜안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놀랍고 반갑다.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자처럼 또는 나처럼, 읽지 않았거나 읽지 못한 책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책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누구나 거실로 들어서면서 탄성을 내지른다. 아, 저도 이게 로망이에요. 거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장을 마주하며 사람들은 외친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렇게 묻는다. 근데 혹시 여기 꽂힌 책 다 읽으신 건가요? 물론 아니다. 다 읽은 책만 꽂아 놓지 않는다. 앞으로 읽을 책도 꽂혀 있다. 그리고 그 비중이 꽤 된다.

나는 이렇게 변명하곤 한다. 책의 수명이 워낙 짧다고. 나중에  사야지 마음 먹고 있다가 몇 년 뒤 그 책을 사려고 하면 어느새 품절 도서가 되어 있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판단이 들면 많은 경우 그 책을 사곤 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내 책장 선반에는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아지곤 한다. 그리고 읽은 책 중에서 소장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는 책은 누군가에게 주기 때문에 그 비중은 더 늘어만 간다. 다행히 독서가이면서 책수집가이면서 소설가인 장정일 작가와 김영하 작가가 이에 대해 나 대신 이렇게 변명을 해준다.

역설적이지만 책 수집가가 책을 읽게 되면, 책을 모을 수가 없다. 읽은 책만 서가에 꽂아두기로 한다면, 서가의 선반은 매년 겨우 한두 칸밖에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책 수집가는 책의 본래의 기증인 '읽기(독서)'와 다른 방법으로 책을 소유한다. 어떻게 보면, 읽기를 통한 책의 소유란 그야말로 거죽만의 것(실용적)일 수 있다. -장정일,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56쪽 (117)

책의 정말 중요한 기능은 전시되는 것이다. 꽂혀 있는 것. 왕궁의 근위병처럼, 놀이동산의 꽃시계처럼, 책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히 기능하고 있다. 전시!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목적이며 숨겨진 (핵심) 기능이다. 대부분의 책은 자신의 전 생애를 책꽂이에서 보내고 그것으로 제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의연하다. - 김영하, 책, <포스트잇> 53쪽 (118)

이렇게 시시콜콜 저자가 쓴 글에 대해 소회를 여기서 나누려고 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이쯤에서 정리를 해야겠다. 우리나라에  헌책에 대해 이렇게 애정을 가지고 수집하는 사람을 정말 제대로 찾아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흥분한 상태로 그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했다. 그의 책에 대한 정의를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물건과 그 역사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얽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많은 감정과 희망을 보존하며, 미혹마저도 기꺼이 보존하려 든다. 책의 힘은 아주 강력하고도 미묘하다. 책은 그냥 물건이 아니다. 수많은 인생, 수많은 시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목소리를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21)

책은 그저 한 권의 책이 아니다. 수많은 인생, 세월, 시간, 추억을 켜켜이 쌓아 올린 거대한 우주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니 헌책이라고 무시할 수가 없다. 그저 헛간에 버려진 책으로 치부해버리기엔 너무 위대하다.

새책이든 헌책이든 책은 세상에 나오는 그 즉시 이미 목적을 달성한다. 누군가에게 팔려 읽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책에 남은 어떤 흔적은 그 자체로 눈부시게 강렬하다. 나는 가끔 헌책방이야말로 책의 우주 같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곳은 책에 남은 흔적들의 우주이기도 하다고. (마지막 문장. 198)

언젠가 내 책이 중고서점에 진열된 것을 보았다. 나는 내 책이 아닌 것처럼 슬쩍 책 뒷표지에 매겨진 가격을 보았다. 흠. 이 정도 가격에 헌책으로 팔리는군.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가 내 책을 헌책방에 팔았다는 것에 대한 양가 감정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책도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 보존서가로 들어가고, 더 세월이 흐르면 헌책방으로 무더기로 팔려나가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많은 사연을 안고 도착한 헌책방의 헌책에 대한 오마주요, 위대한 사랑의 글이다. 이 책도 언젠가는 헌책이 되겠지. 그게 책의 숙명이니까. 아무튼, 헌책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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