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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Apr 18. 2024

아마추어여서 다행이다

아마추어여서 느끼는 행복

음식을 만들어서 끼니를 해결하기보다는 사 먹거나 배달하거나 간단한 조리식품을 이용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때로는 음식을 준비한다는 건 일상이 아니라 무언가 특별한 일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먹고 싶거나 좋아하는 음식이 무언지 묻는 경우는 많지만 음식을 만들면서 좋아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묻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음식을 자주 만들지는 않지만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잘 드는 칼로 재료를 손질하는 순간 때문이다. 특히 대파를 써는 건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이다. 나무 도마 위에 기다란 대파를 올려놓고 칼로 송송송 썰기 시작하면 길쭉한 대파가 작은 동그라미들로 바뀌기 시작한다. 내 손에 딱 맞는 칼집과 알맞게 날이 선 칼날, 너무 오래돼서 마르지 않고 적당한 수분감을 유지하고 있는 대파의 탱글탱글한 질감, 대파와 칼이 만나는 순간 팔에서 손목으로 보내는 힘, 대파의 단면을 가로지를 때 느껴지는 서걱거림과 대파를 가로지른 칼날이 나무도마와 살짝 닿으면서 한 번의 칼질이 끝났다는 걸 알려주는 듯 나는 소리. 혼자서 재료를 손질하는 상황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칼, 재료, 도마, 내가 함께 합을 맞추며 균형을 잡는 듯하다. 그래서 대파를 썰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썬 대파를 통에 담으면서부터는 이제 저걸로 무얼 요리할까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파가 신선하니깐 저녁에 닭백숙을 끓여서 파를 가득 넣어야겠다, 내일은 간식으로 라면 끓여서 파를 넣을까, 파기름 내야 하는 요리가 뭐가 있나. 냉장고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통을 보고 있으면 김장을 마무리하고 나서 어머니가 "이제 겨울 보낼 준비가 끝났네"라고 하시는 말에서 느껴지던 든든함과 개운함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다른 이유는 순간순간 사람들이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드는 중이나 완성된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고 맛보면서 "이걸 누구랑 같이 먹으면 좋을까나~"라고 혼잣말하게 되는 때가 있다. 양파를 가득 볶아서 끓인 카레를 맛보며 지난번에 놀러 온 아이 친구들을 부르라고 할까 싶고, 미역국을 맛보다 보면 이번 달 친구 00가 생일 아닌가? 궁금해진다. 잘 구워진 고등어와 도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쌀로 지은 밥으로 식탁을 차리면 자취하는 직장 동료라도 불러서 같이 먹을걸 싶어 진다. 음식을 완성하는 동안 곳곳에서  혼자 먹지 말고 먼저 연락해서 나눠서 같이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하지만 이런 만족이 가능했던 건 내가 전문 요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어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나는 천천히 대파를 음미하며 썰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음식을 누구와 먹을지 고민하기보다 재료와 조리시간, 적정가격, 테이블 회전율을 더 신경 써야 했을 것이다. 자존심도 내려놓고 트렌드와 고객의 니즈를 쫓아가야 하는 전쟁이 일상인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내가 요리사였더라도 쉬는 날 마저 요리를 하며 함께 나눌 누구를 상상하고 행복해 할 수 있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니까 음식에 대한 내 만족은 본업이 아니라 호기심이었기 때문에,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가능한 셈이다. 그동안 음식을 준비하고 맛보는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은 자발적인 집중을 할 수 있었다. 파를 썰 때, 양파가 볶아지며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볼 때, 꼬막을 삶으며 언제 불을 꺼야 가장 좋을지 지켜볼 때, 간장과 액젓 중에 무엇을 넣는 게 좋을지 고민할 때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었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민감해질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누구와 나누면 좋을지 떠올리게 됐다. 


그건 아마추어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다. 프로와 달리 완벽하지 않아도, 실수를 해도 괜찮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쭙잖게 프로가 되고 싶었다면, 나는 이미 쫄딱 망했을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몇 개의 대파를 썰 수 있는 기계에 칼질을 내어주거나 무슨 메뉴를 만들까 고민하는 대신에 주문지에 적힌 메뉴를 만들기 위해 기계적으로 동작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다행이다. 내가 아마추어여서. 그저 손수 만든 집밥을 나눌 수준이면 충분하다. 눈대중으로 양념을 넣어도 나물 무침 간이 잘 맞던 할머니의 손맛을 따라 할 정도만 되면 된다. 그렇게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아마추어여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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