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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Apr 25. 2024

하나를 보고 열을 알 필요가 있나

생선구이 덕분에 알게 된 것

옛이야기 중에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된 여러 손님들이 누구인지 맞추는 이야기가 있다. 주막집 딸은 화롯불의 불씨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며 산에 사는 사람, 양반, 들에 사는(농사짓는) 사람을 예상한다. 딸의 이야기를 들은 부모가 감탄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읽는 나도 그럴듯해 보였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야기이다.


A와 마주 앉아 생선구이를 먹게 되었을 때 나도 주막집 딸처럼 여러 생각을 했다. 고등어, 조기, 갈치, 임연수 종류와 상관없이 A의 젓가락은 생선의 살이 가장 많은 곳으로 직행한다. 그래서 A와의 식사에서는 생선 머리와 꼬리, 배 부분은 온전한데 살이 가득한 부분만 헤집어져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A의 생선구이 먹는 모습에 처음에는 많이 놀랐다. 내 방식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생선이 나오면 등 쪽의 잔가시를 먼저 발라낸다. 갈치는 젓가락을 눕혀서 집게처럼 지느러미를 집은 후 잡아당긴다. 고등어나 조기는 꼬리 쪽 지느러미 부분에 수직으로 젓가락을 넣은 후 등 쪽 방향으로 주욱 긁으면 가시가 튀어나온다. 그리고서 갈치는 등뼈에 붙은 살을 결을 따라 젓가락으로 톡톡 긁으면 네모난 살이 예쁘게 떨어져 나온다. 고등어와 조기는 다시 등 쪽으로 젓가락을 넣어 몇 번 가로로 왔다 갔다 한 후 들어 올리면 흐트러지는 살 없이 생선이 반반으로 나뉜다. 그리고서 식사 시작.


A는 왜 그렇게 먹는 걸까? 왜 나와 차이가 있는 걸까? 나와 비교되는 점을 찾아본다. 가능성 중 하나는 A는 물고기를 흔하게 볼 수 있는 바닷가 출신이고 나는 상대적으로 들에 사는 지역 출신이기 때문일 듯했다. 굳이 생선 가시를 세세하게 가르기보다는 "먹고 부족하면 또 먹지 뭐."가 가능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동네 근처 포구에 가면 작은 물고기보다는 크기가 큰 물고기를 구할 수 있고 싱싱한데 값도 저렴해서 부담 없이 생선을 먹을 수 있었을 A. 맛볼 수 있는 생선은 생물보다는 주로 소금에 절인 것을 장날 생선장수가 와야지만 먹을 수 있던 나.


내가 생선 가시를 바르는 방법을 익히게 된 건 아버지가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부터였다. 한 마리 물고기가 젓가락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먹기 좋게 살을 드러낸다는 게 신기했다. 직접 해보기 시작했을 때는 젓가락이 생선 등뼈와 부딪히며 살을 발라낼 때의 드르륵 하는 촉감이 좋았다.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 있는 잔가시를 바르는 일도 너무 어렵지 않은 수수께끼를 풀 듯 적당히 흥미로웠다. 주는 것을 먹기만 하던 수준에서 점점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게 되는 수준으로 성장한다는 것, 어른 앞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매력 중 하나였다.


어려서부터 연습한 기술을 펼치기도 전인데 오늘도 시작은 파이이다. 임연수 구이는 살을 잘 발라서 먹은 후에 남은 껍질을 흰쌀밥에 싸 먹는 게 일미인데. 또 아예 난도질을 해 놨네... 어찌 손 쓸 수 없게 되어버린 생선구이를 보면서 A에게 물었다.

 "왜 생선구이를 뼈 안 바르고 이렇게 먹어?"

그러자 A는 무심히 젓가락질을 하며 답했다.

"생선 가시 바르기가 번거롭잖아. 가시 많아서 난 생선구이 별로 안 좋아해."


'아니야! 너는 바닷가 출신이라 그런 거야. 그래서 너무 풍족하게 생선을 먹어서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라고! 이걸 봐. 내가 하는 걸 잘 보라고. 생선구이는 이렇게 해야 해. 그래야 남은 살 없이 잘 먹을 수 있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A의 짧은 대답을 듣자마자 설득되는 기분이었다. 진실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번거롭고 귀찮다잖아. A는 바닷가에 살았지만 그냥 생선 가시 바르기가 귀찮았을 뿐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을 지난 후에는 A는 들과 산이 많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상대가 가진 배경으로 그의 특징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생선구이 먹는 법에 대해 A와 나 사이에 여러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공통점도 있다. 생선살을 먹는다는 것이다. 맛있게 생선살을 먹기 위해 그는 번거로움을 줄이는 방법을, 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등산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서로 다른 코스로 정상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정상까지 직진인가 우회로인가. 정상을 향하는데 내가 옳은 길이고 너는 틀린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여기 풍경이 더 좋다고 꼬시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자칫 식사 자리 분위기만 어색해지기 쉽다. 정말 원한다면 농담하듯 가볍게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다.


요즘에도 A와 생선구이를 종종 먹는다. 그러면 주로 내가 먼저 생선 손질을 한다. 잔가시와 뼈를 바르고 살을 떼어먹기 좋게 모아두는 동안 A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 다 됐어"라고 하면 "이야 역시 잘하네"라는 공치사가 온다. 그리고 함께 젓가락을 옮기며 식사를 한다. 포슬포슬한 밥 한 숟가락과 따뜻한 생선구이 살을 함께 씹으면서 담백하고 고소한 감칠맛을 느낀다.  


주변에서 우리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은 뼈를 잘 바르는 걸 보니... 유튜브에서 방법을 익혔나?', '가만히 보고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나중에 계산을 하지 않을까?' 이러지 않을까. 어쩌면 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저 사람들 참 맛있게 먹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누구와 먹던 맛있게 먹는 게 제일이고 장땡이다. 방법에 차이가 있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라면 넘어가도 된다. 마치 옛이야기에서 주막에 누가 머물다 갔는지 알아맞히는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모두 잘 쉬고 떠났다는 내용이 깔려있는 것처럼. 


그래서 A야, 너랑 생선구이 먹으며 껍질은 포기했다. 하지만 네 덕분에 고소한 뱃살과 뼈 사이에 붙은 살은 다 내가 먹는다. 너는 모르는 일이더라도 아무튼.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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