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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Apr 11. 2024

비려서, 비리지만, 비려도, 비리니깐

비린맛은 묘하다

사람의 고유한 특징을 살피는데 음식만 한 게 없다. 어떤 음식을 즐기는지를 알면 상대를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단지 그가 무엇을 먹는가에만 관심을 둔다면 이 말은 부정확하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관심 있거나 민감하게 느끼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음식에 담긴 어떤 맛, 맛의 조화와 균형을 선호하는지를 살펴야 상대의 숨은 이야기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야구 선수 능력치를 설명할 때 5 툴(five-tool) 용어를 쓰기도 한다. 5 툴처럼 사람이 갖고 있는 맛 민감도를 만들어봐도 재밌을 듯하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떫은맛, 매운맛, 감칠맛... 등을 넣어서 5 각형, 8 각형 툴 도형의 능력치로 시각화한다면, 여러 식사자리에서 유용하지 않을까. "저는 신맛의 민감도가 8 정도 되고요. 단맛은 3 정도 됩니다. 맞춰서 요리해 주세요" "우리 가게는 짠맛 6, 매운맛 4, 감칠맛 3을 기본으로 조리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상대의 MBTI가 무엇인지 묻는 것처럼 음식을 앞두고 분위기를 가볍게 하는 대화로 가능할 듯하다.


맛의 5 툴을 만든다면 꼭 넣고 싶은 맛이 있다. 비린맛이다. 비린 향으로 해야 할지 맛으로 해야 할지 느낌으로 해야 할지 애매하다. 어쨌든 다른 맛보다 호불호가 큰 요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5 툴의 한 요소로 적당할 듯하다. 비려서 못 먹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비려서 먹고, 비리지만 먹고, 비려도 먹고, 비리니깐 먹는다. 여러 맛들도 비슷하겠지만 비리다는 건 특히 내가 의지를 갖고 감내해야 하는 맛이다.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을지 결정해야 하는 맛.


남쪽 바다가 고향인 지인이 있었다.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날로 먹는 꽃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지인은 바다에서 갓 잡은 꽃게를 바로 등껍질을 떼고 몸통을 반으로 쪼개서 안쪽 살을 쭉 빨아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 포구에서 놀다 보면 뱃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어른들이 그렇게 꽃게를 건네주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말이 "그렇게 먹으면 안 비려요?"였다. 그 말속에는 '다른 요리 방법도 있는데 굳이 그 재료를 그렇게 먹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궁금증이 들어있었다. 육고기도 회로 먹으면 비리다고 하는데, 생선은 더하지 않을까. 꽃게는 간장이나 고추장에 담가 시간이 지나며 양념이 살에 스며드는 맛으로 먹는 게 아닌가 그렇게 날로 먹을 수 있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일인데, 그게 맛있다니? 그와 나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의 비린맛 능력치는 일관적이지 않고 음식 종류에 따라 다르다. 여전히 견디기 힘든 비린맛이 있다. 초등학생 때 음악 가창 시험을 앞두고 계란을 날로 먹어보려 했던 적이 있었다. 날계란을 먹으면 목이 풀려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진짜인지 궁금했다. 정말 높은 자리 미, 파 음을 계란 먹으면 낼 수 있다고? 고음은 아니더라도 음색이 자연스러워진다고? 고민을 하다가 계란 껍질을 벗겨내고 날계란을 후루룩 입에 넣었다. 하지만 삼킬 수가 없었다. 물컹한 식감과 비릿한 느낌. 결국 삼키는데 실패하고 토해냈다.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는지 지금도 계란 프라이를 하면 반숙에 손이 가지 않는다. 비빔밥에도 넣은 반숙도 가능하면 덜어낸다. 보고만 있어도 비리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시장에서 가끔씩 조개젓을 사 오셨다. 조개를 소금으로 절여서 파는 단순한 재료. 여기에 고추나 고춧가루, 편마늘을 넣고 버무린다. 흰쌀밥 한 숟가락을 떠서 그 위에 조개젓을 올려서 먹는걸 참 좋아했다. 짠맛의 강렬함과 뒤에 밀려오는 매운맛이 비린맛과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조개젓은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음식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젓갈이 삭으며 비린맛이 심해졌다. 나는 그래도 그 맛을 좋아했고 나중에는 양념 무침 없이 날것 그대로의 조개젓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곤 했다.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는 후에도 종종 그리워지는 맛이다.


얼마 전 부모님 댁에 갔다가 조개젓이 있어서 조금 받아온 적이 있다. 젓갈을 작은 그릇에 담아 식사에 찬으로 올렸다. 너무 과하게 삭지 않아서 양념하지 않아도 그냥 먹을만했다. 아빠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음식이라며 아이에게 권해보았다. 나를 따라 밥 위에 조개젓 하나를 얹어 먹어 본 아이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맛이 없다고. 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모호함이 아니고 분명했다.


"맛없어"

"그래? 짜?"

"너무 비려"


아이 답을 들으니 예전 지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날로 먹는 꽃게 맛을 상상하며 서로 다른 표정을 짓던 지인과 나 사이의 거리만큼 아이와 나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조개젓의 비린맛에 어렸을 때부터 무뎌져있었다. 내게는 '비려도 먹는' 수준이 아니라 '비리다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먹는 음식이 된 셈. 하지만 아이에게는 '비려서 굳이 먹을 필요가 없는' 음식이었다. 아이와 나의 5 툴에서 한 요소는 차이가 극명했다. 


아이는 조개젓은 먹지 않는다. 하지만 계란프라이는 반숙을 먹는다. 서니 사이드업도 제법 먹는다.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그렇게 덜 익은 것이 맛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나는 조개젓을 먹는다. 하지만 계란프라이는 완숙만 먹는다. 반숙은 비리다며 먹지 않는다. 내 모습을 보며 아이는 반숙이 왜 맛이 없냐며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될까. 비슷하게 맞춰질까 아니면 더 멀어지게 될까. 기회가 되면 여러 맛의 5 툴이 아니라 일단 젓갈과 계란, 아이와 함께 맛보는 다른 비린 음식들로 5 툴을 해봐야겠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공유하며 살아가는지, 내가 강제할 수 없는 너만의 고유함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알게 될 듯하다.


비린 맛. 맛의 중심이 되기는 어렵지만 음식에 머물면서 매혹과 방해를 모두 할 수 있는 맛. 비린맛 덕분에 나는 식탁 위에서 조개젓을 만났을 때 4번 타자로 우뚝 섰고 계란 반숙을 만났을 때 벤치워머를 자처했다. 어떤 음식을 먹는가로 상대를 이해하는데 도움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비린맛은 그런 예상을 자꾸 엇나가게 한다. 상대는 대주자처럼 호리호리했는데 홈런을 쾅쾅 치거나, 160km 파이어볼러인 줄 알았는데 너클볼러일 수도 있다.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런 게 비린맛의 매력일까. 비린맛은 예측하는 재미가 아니라 예측이 틀릴 수 있는 재미를 준다. 그렇게 익숙한 상대에게도 묘한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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