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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Mar 21. 2024

난 네가 요리사가 될 줄 알았다니깐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지만 진중하게 내게 남은 음식 찾아가기

"난 네가 요리사가 될 줄 알았다니깐"

어머니는 종종 그런 말을 했다. 내게도 하고 내 주변 사람에게도 하고. 여러 번 들은 말이어서 그 이유도 알고 있었다. 


"애가 얼마나 까탈스러웠는지..."

하도 밥을 안 먹어서 동네 친구들 모아다가 비빔밥을 만들어서 몇 술 떠 먹였다거나, 병원에 데려갔더니 아이가 먹는 거라도 일단 먹이라고 해서 콜라에 밥을 말아먹게 했다거나, 배가 고파도 밥을 안 먹겠다고 방바닥에 배를 쓸며 뒹굴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정작 나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다만 찬물에 밥과 설탕을 풀어서 말아먹던 일, 초등학교 졸업 사진에 한쪽 빰에 버짐이 가득했던 내 얼굴 정도가 기억에 남아있다. 요리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리 생각했던 이유는 어머니 말씀이 맞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나는 유난히 밥투정하고 까탈스러운 아이였다. 


내가 좋아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살아가며 작성한 여러 서류에서 묻던 취미 칸에 무심히 적어오던 내용들. 독서, 운동, 음악감상, 여행, 사진 이런 말들. 그때는 사실이었고 이제는 아니기도 한 말들. 그것 말고도 평생 동안 나를 만들어온,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늘 민감했던 게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아마 음식이겠다 싶다. 왜? 음식은 살아가면서 항상 마주쳐야 하니깐. 점심 식사를 하고 나면 오늘 집에 가면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어느 때가 되면 불현듯 어떤 음식이 생각난다.  지금 밥 먹으면서 다음 끼니 걱정하는 게 제일 싫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음식의 맛과 모습을 상상만 해도 설렌다.


음식은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음식이 주변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기도 한다.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 그건 마신다기보다는 나보다 주인공인 그 커피를 만나는 일이었다. 밑반찬으로 내어온 봄동이나 부추무침 하나가 다른 음식의 맛을 북돋고 식사 자리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 주기도 했다. 물론 두 경우가 모두 날카로운 경계를 가진 건 아니었다. 교집합처럼 걸쳐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소한 참기름과 젓갈의 감칠맛, 살짝 매운 고춧가루, 잎의 단맛이 어우러진 봄동무침이 맛있으면 고기요리를 두고도 봄동에 밥을 비벼 먹게 되곤 하니깐. 


그렇게 맛보고 찾아다니고 만들어보았던 여러 음식 중에서, 배고파도 맛없으면 안 먹겠다고 바닥에 배를 비비며 누워있던 아이에게 지금까지 남은 음식은 무엇인가. 어떤 음식에, 그 음식의 무엇 때문에 내가 끌렸는지 궁금하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지만 그렇다고 진중하게 정리해 본 적이 있었을까. 한 번쯤 정리하고 싶었다. 조금씩 꾸준히. 너무 늦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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