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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May 23. 2020

에필로그. 오늘부터 1일

그에게 묻다

밤 새 나는 그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썸이라고 생각한 시간들 속에서 나만 애태웠는지, 대체 그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여러가지로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를 괴롭혔던 질문들을 해소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제일 중요한 질문은,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는지였다. 보통의 오랜 친구가 연인이 될 때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오랫 동안 짝사랑하고, 끝내 그 마음을 받아줄 때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나도 그랬지만, 그도 학창 시절에는 정말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심지어 최근의 울산 여행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이건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알고,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건 9월 쯤. 나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이미 속터져 안달복달 나 있을 때 였다. 생각해보건대, 그는 연애 X자라서, 아마 남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보다 훨씬 늦게 그것에 대해 인지하는 것 같다. (그의 첫 연애는 스물셋 때였고, 두 번째 연애는 여자가 답답해서 먼저 고백했다.)



ⓒ구글 검색



나는 착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착각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그 스탠드 선물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어봤다. 정말 순수한 대답.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본인이 사주고 싶어서. 하지만 그 얘기를 하면서, 왜 본인이 사주고 싶었을까? 생각해보니, 결국 본인이 깨닫지 못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를 생각했나 보다, 라고 한다. 


그렇다면 뮤지컬 보러갈 때 먹었던 돌솥비빔밥 한 숟갈은? 먹던 숟가락으로 챙겨준 건 무슨 의미인지 물었는데, 정말 그때는 한 입 먹을래?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니었다고 했다. 먹는게 좋을 것 같아서 권한 것이고, 먹던 숟가락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였다고.


그동안 자상했던 행동들은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잘 해주고 싶어서 였다고 한다.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사주고 싶어서, 먹을 것을 챙겨주고 싶어서, 하고 싶은 것들은 같이 하고 싶어서. 이러한 것들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주변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만남을 독촉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계속 한 박자씩 늦어서, 내가 못 기다리고 떠났으면 어쩔뻔 했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상대방이 어쨌든 본인에게 그만큼의 마음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인연이라면 자기도 거기까지 라나. 남들은 다 속터져 했는데? 라고 물으니, 내가 만날 사람은 본인이고, 본인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움직인 것인데 남들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지 않느냐고. 그럼 됐지. 한다.


결국 우리의 만남은 타이밍의 문제였고, 생각이 많은 나는 진작부터 모든 경우의 수를 깔고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었지만, 거북이도 아니고 나무늘보 수준의 그는, 정말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 전진 속도가 너무 느려서, 골인 지점이 보이기 전까지 본인도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몰랐던 것 같다. 아주 다행히도, 나의 인내심이 발휘된 덕에 그는 너무 늦지 않게 골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마터면 만약 내가 먼저 고백했더라면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해 그의 방향을 틀어버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본인 마음에 확신을 가질 때까지, 느린 사람을 기다려 준 것. 그게 아마 최대 수확이 아니었나 싶다. 다만, 확신을 갖고 난 그의 행동력은 몹시 빨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나는 반대로 행동은 매우 느리다.)   



이어서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질문을 했다. 울산여행에서의 사진과 우산의 의미. 그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답했다.



아니 사귀지도 않는 사람이랑 어떻게 한 우산을 써?


사귀는 사이가 아니기에, 그 어떤 터치도 할 수 없었던 것이고, 우산 또한 이성이 같이 쓰기엔 너무 친밀한 공간이라 생각하기에, 사귀지 않는 사람이랑 같이 쓸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의 스킨십 기준은 철저히 사귀느냐 아니냐 였다. 아, 그래서 그동안 밤을 그렇게 지새우면서도 아무 일이 없었구나. 그리고 사귀기로 하자마자 손잡고 키스한 거구나. 이토록 엄밀하게 거리감을 두는 남자라니. 처음봤다!


나는 그것 때문에 속을 끓였다고 얘기를 하니, 오히려 그는 앞으로는 안심하면 되겠네 한다. 나 이외의 여자에게는 그렇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니까. 반대로 나에게는 그동안 남자들이랑 어떻게 만나왔길래 이런 것에 아무렇지 않아 하냐고 물어왔다.(응응?;;) 사진 또한, 여자인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 중에 본인 손이 닿은 사진이 있냐고 반문했다. 본인은 그 누구든 사귀지 않으면, 먼저 닿지도 않는다며, 당당하게 얘기했다. 아, 정말 지극히 낮은 경우의 수에 해당하는 남자가 이 남자였구나. 그동안 내 마음 고생은 스킨십을 마주하는 생각의 차이였구나 싶었다. 나는 보수적인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방적인 편도 아니었는데, 그의 기준에서 나는 거의 날라리나 다름 없었다. (아, 억울하다!)


부랴부랴 수습하고 다음 얘기를 이어간다. 그 역시 나에게 궁금한게 많았고, 그 또한 내가 언제부터 이런 마음이었는지 궁금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해왔다. 최근에 있었던 일부터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며 얘기하다가, 결국 그 시작점은 분식집에서 따뜻한 물을 떠줬을 때로 왔다. 나는 그에게 이야기 했다. 그 행동은 너에게는 그냥 친절이고, 나도 그게 단순 친절인 걸 알고 있어 그 때 그 순간에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이렇게 되고 난 후 되돌아 생각해봤을 때 그 순간이 떠오르기에, 그 행동이 절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결론은, 앞으로 다른 여자에게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나같은 사람이 또 생기면 안 되지!)  




아마도 그 날 별이 잘 보였다면 이런 느낌이었겠지 ⓒ구글 검색




그렇게 텐트가 날아갈 듯 부는 바람 가운데에서,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를 들어가며, 밖은 난리통인데, 안은 고요한 호수 위에 있는 것 마냥, 머리 위에 달아놓은 작은 랜턴 아래 앉아서 우리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동안 밤샘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아마, 이때부터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동안은 슬쩍 지나쳐 보기만 했던 그의 얼굴을, 그의 눈빛을,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았다.








10월 4일 아침이 밝았고, 아침부터 동아리 동기 카톡방은 끊임 없이 울리고 있었다. 평소에 그 방에서 말 많던 우리 둘이 어제 하루 종일 아무 말이 없었기에, 친구들은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갑자기 친구들은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 아침 댓바람부터 우리를 찾았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지? 하면서 걱정하고 있었다. 아마 이 들은 우리가 잠적하고 나가는 것은 아닐지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사귄 후 첫 인증샷 ⓒ과거 사진첩



그 순간, 톡방에 사진을 올렸고, 친구들은 모두 축하의 멘트를 보냈다. 한 친구는 지금 1일 째에 밤을 같이 보낸 거냐며 각종 드립을 치기도 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만남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오히려 지지해주는데도 그가 꿈쩍을 안해서 다들 지쳐있었다.) 사귀자마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만남을 오픈했다.



결국 언양 불고기는 다음날 점심으로 먹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운전을 하면서도 그의 오른손은 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8년을 돌아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는 꼭 붙어있었다.



앞으로 갈 길은 멀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의 성적 취향도 모르고, 가족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결혼을 위해 닥칠 난관이 무엇인지, 그 과정 속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을지, 알고보니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지 이런 것들에 대해 모두 무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단계를 모두 알기 위해서는 일단 사귀어야 하는 것이었고, 이제야 막 첫 발을 내딛었다.



우리는 다짐했다. 당연히 친구일 때는 몰랐던 점들을 보게 될거고, 그게 서로의 예상과 다를 수 있겠지만, 대화로 잘 풀어 나가자고. 무작정 화내지 말고, 싸우지 말고, 최대한 서로를 위해 이해를 해보자고. 이미 각자 여러번의 연애 경험이 있는 이십대 후반이었기에, 8년의 우정을 평생 파트너로서 지켜나가기 위해 필요한 자세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임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을 친구들에게, C의 집에, 우리집에, 동아리 선후배에게 모두에게 널리 널리 알렸다. 특히, 그동안 애태우며 이 만남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던 동기들에게는 무려 소고기를 쏘기도 했다.



우리의 1일은 2014년 10월 3일. 그리고 3개월여 후, 2015년 1월 1일, 

그는 나의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우리집으로 인사오라고 소환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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