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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Nov 07. 2024

선생님이 되면 공부는 끝인 줄 알았는데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 각각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보면서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이 떠올랐어요.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마음이 평화로운 아이들은 제법 서로 닮아있고, 마음의 상처나 고민을 가진 학생들은 제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은 문제로 상담에 의뢰된 학생이라고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사정은 전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거든요.


학생 한 명 한 명이 가지고 있는 배경과 사연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제가 공부해야 할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임용고사가 끝나면 지긋지긋한 공부도 끝이라는 기대는 애저녁에 날아갔어요. 저는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임상심리사도 아닙니다만 상담실 특성상 임상에서 볼 수 있는 학생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정신병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하죠. 만나는 학생이 갖고 있는 증상에 대해 모른 채로 학생을 만날 수는 없으니까요. 의심되는 증상이 있는데 양육자가 알아채지 못해서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을 때, 제가 증상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양육자에게 알려서 임상 개입의 시기를 당길 수도 있고요.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 지겹게 들여다본 상담이론도 시간이 지나니 가물가물 해집니다. 장기기억에 진하게 새겨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가 봅니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초적인 지식을 알고 임하는 것과 모른 채로 임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에서 놀이치료 강의를 듣는 중에 교수님께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우리가 그냥 아이들과 놀아주면 옆 집 이모와 다를 게 없다. 이론적인 배경을 알고, 치료적인 계획에 따라서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치료적 반응을 하는 사람이어야 놀이치료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위해서 의도를 가지고 어떤 반응을 할지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이론적인 배경지식은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병원에 가면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줄여야 건강하다는 뻔한 말을 의사 선생님이 하시잖아요.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같은 말을 하더라도 의사 선생님이 전문가로 인정받는 이유는 잘 먹고 잘 자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어떤 식으로 건강에 영향을 주는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비슷한 맥락으로 상담 장면에서 똑같은 반응을 하더라도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이 학생은 의존성을 줄여갈 필요가 있는 학생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책임감을 돌려주는 반응을 상담장면에서 좀 더 해줘야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좀 더 프로다운 행동이라는 것이죠. 


공부를 하는 것은 상담실에서 만날 학생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저를 위한 일이기도 했어요. 어떤 목적 없이 그냥 임할 때는 저 스스로도 자신감이 떨어지고, 회의감이 찾아오더라고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게 상담이 맞나? 그냥 학생이랑 한 시간 신나게 수다 떤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요. 책에 쓰여있는 지식을 공부하는 것은 상담을 실제로 행하기에 앞서 밑바탕을 튼튼히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일을 할 때 유능감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하죠. 


전공서적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양서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교양서는 아무래도 독자층이 일반적인 대중이기 때문에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과 예시가 많거든요. 그런 표현을 보면서 '부모 상담을 할 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겠구나' 하는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전공서적보다는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해서 지금은 전공서적보다 교양서를 읽는 날이 더 많아요.


일을 하다 보면 명문화된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마주하곤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상담보다도 복지 측면의 개입이 학생이 겪는 어려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학교에 복지사 선생님이 계신다면 협조를 요청할 수 있겠지만, 모든 학교에 복지사가 있는 건 아니라서 필요한 경우에는 학생이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을 알아봐 준 적이 있어요. 학생이 처한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사회기관을 직접 연계해 주거나 안내하기도 하고, 초등학생 진료를 보는지 동네 정신의학과에 전화를 돌려서 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한 적도 있어요. 물론 양육자가 적극적으로 알아볼 수도 있는 영역이지만 양육자가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거나 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인 경우 양육자의 적극성을 기대하기에 어려움이 있거든요.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자원이나 제도적 혜택 같은 것을 미리 알아두는 것은 도움이 될 거예요.


공부가 끝이 없다는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그럼 너는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럼요!" 하지 못하는 제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양심이 콕콕 찔리네요. 그럼에도 계속 배우고 알았던 것을 되새기는 과정은 필요한 일이니 이번 글은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것으로 해야겠습니다. 





사진: UnsplashDebby Hu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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