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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Dec 15. 2024

작지만 강한 존재들을 만난다

어머니 한 분이 '혹시 아이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주눅 들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며 상담을 신청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사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생 걱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자녀와 입양에 대한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하셨거든요. 다만 자녀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기인한 상담 신청인 것이었죠. 그래도 일단 학생을 만나보자 싶어서 일정을 잡았습니다. 입양가정이라는 가정환경을 이유로 의뢰된 사례는 처음이라 관련된 영상도 찾아보고, 동화책도 준비해 두면서 학생을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조심스러웠던 제 마음이 무색하게 학생은 첫 만남부터 편안한 태도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입양에 대한 이야기는 학생의 입으로부터 먼저 나왔습니다. 가족에 대해 말을 하다가 자신이 지금보다 어릴 때 입양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어떤 어색함도 없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웠어요.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여느 가족의 에피소드와 다를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어떤 거리낌도 없었던 대화는 입양이라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불편함도 주지 못한다는 선언 같았습니다.  


사별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던 학생도 생각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와의 사별이 자녀에게 상처로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어머니께서 상담을 신청한 사례였어요. 죽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도 전에 아버지와 사별을 했다는 학생을 만나기 전에도 제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아직 저도 경험하지 못한 큰 슬픔을 일찍 겪은 학생을 만나는 거였으니까요. 1학년 학생이었는데 참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고 기억합니다. 저와의 시간을 좋아했고, 좋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학생이었어요. 덕분에 무거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분위기가 한층 가벼워졌죠. 


물론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서는 슬프다고 표현했어요. 꾹꾹 눌러 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슬픔에 압도되어 있는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했던 것, 함께 놀았던 일, 말썽을 피워 아버지에게 혼났던 일 같은 것을 추억하며 이야기했어요. 사랑과 그리움, 애도의 마음이 묻어나는 담담하지만 진실된 표현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엄마와 동생을 사랑하고 그들과의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줄 아는 학생이었어요.   


부모와는 연락이 끊겼고 조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되새김하며 좌절하고 있지만은 않았어요. 학생과 조부모와의 유대 관계는 단단했고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을 보살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고를 잘 알고 있었죠. 학생의 걱정은 오직 할머니, 할아버지의 건강뿐이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혼났던 이야기를 하면서 불평을 하다가도 제 심장 같다는 그분들을 위해서 학생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성실히 하는 아이였습니다. 


상담실에서 학생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직 어리고 작지만 동시에 어른들보다도 더 강하고 단단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록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각자의 삶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기쁨, 나름의 성취, 내면의 힘이 있다는 것을 봅니다.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상처에만 짓눌려 있지는 않더라고요. 강한 회복력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런 아이들을 만날 때면 좋은 쪽으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듭니다. '아, 네가 아이라고 너를 너무 얕봤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요. 그러면서 한 편으로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그 생각 끝에는 어쩐지 훌쩍 커 보이는 학생들의 잔상이 남아요. 어른이라고, 선생님이라고 학생들에게 아는 척, 강한 척하고 있지만요. 같은 상황에 나라면 그 아이들처럼 단단하게 현재를 살아갈 수 있었을지 영 자신이 없어지거든요. 가끔 이렇게 어른들보다도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는 학생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 감탄과 놀라움, 반성의 마음이 한참 머물다 갑니다.  



사진: UnsplashRobert Col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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