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 3. 성장촉진 보드게임 팁-(1)대충과 열심, 그 사이 어딘가
어린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아이가 게임에서 지면 너무 실망할까 봐 '내가 봐줘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인데 지금은 아이라고 해서 대놓고 봐주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아이와의 게임에서 무조건 이기겠다고 승부욕을 불태우지도 않고요. 그저 정정당당하게 임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아이가 승자가 되었을 때 그 성취감과 유능감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선생님이 봐주는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승자가 되면, 일단 이겼으니 기쁘겠지만 그 기쁨을 100퍼센트 만끽하기는 힘들 거예요. 온전히 내 실력으로 이긴 게 아니라는 걸 아이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봐주는 것도 아닌데, 나보다 훨씬 이 게임을 많이 해봤을 선생님을 정정당당하게 이겼다고 상상해 보세요. 진짜 내 실력으로 승자가 되었다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티가 나지 않게 봐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티 안 나게 봐주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제법 빨리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아이라고 해서 게임을 할 때 봐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외는 있어요. 게임과정에서 한 번의 좌절경험조차도 치명적일 수 있는 정도의 매우 우울하거나 위축되어 있는 아이와 만날 때가 그런 예외 상황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최대한 져주는 티가 나지 않게 하려고 신경을 씁니다. 그래도 알아차리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요.
제가 해본 보드게임 종류 중에 그나마 아이를 봐주는 티가 덜 나는 게 ‘우노’ 같은 카드게임입니다. 내가 가진 카드는 나만 볼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 카드를 내려놓으면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카드가 없는 척 카드를 더 가져올 수 있거든요. 약간의 아쉬워하는 연기를 더하면 금상첨화죠. 일부러 져주는 것은 아이의 주호소 문제가 무엇인지, 유능감 손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발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조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아이와의 보드게임 시간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부욕을 불태우지는 마세요. 아이와 보드게임에서 지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으신가요? 대부분은 그렇다 할지라도 같은 게임을 연속으로 지고 나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이게 왜 안되지?’, '이건 봐준 것도 아니고 진짜 진 건데...' 같은 생각이 피어오르실 겁니다. 아무리 아이라고 해도 승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죠.
특히나 우연게임, 신체게임이 아닌 인지전략게임에서 연패를 하면 ‘내가 아이한테 머리 쓰는 걸 이렇게 연달아진다고?’라는 생각이 들면서 승부욕의 불씨가 지펴질 수 있어요. 그럼 그 순간 잠깐은 상담선생님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게임에서 이겨야겠다는 마음으로 몰입하게 될 수 있지요. 이럴 때는 나의 역전이를 빨리 깨닫고 다시 상담자 모드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상담장면에서 아이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이유는 아이의 여러 가지 역동을 관찰하고, 필요한 개입을 통해 아이를 돕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대놓고 봐주는 것도, 이기겠다고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선을 지키면서 아이와 만나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아이와 보드게임을 할 때야 말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태도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