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예 Mar 20. 2024

학교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아요

목소리를 삼킨 아이 A 이야기

* 본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사례에 기반하여 각색된 것임을 밝힙니다.


불안은 생존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위험에 대비하게 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적당한 불안은 안전을 도모하게 하고, 생존에 도움을 준다. 도로에 있던 차가 나를 향해 돌진하면 '이대로 있다가는 차에 치이겠다'는 불안을 느끼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 어떤 불안도 느끼지 못한다면 나를 향해 돌진하는 차에 치여 큰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하다.


이렇게 불안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지만, 인간을 아주 괴롭게도 한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울려야 하는 불안의 사이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면 일상생활이 괴로워진다. 불안이 과도해져서 아주 일상적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무슨 일이 곧 벌어질 것처럼 불안을 느끼는 것은 분명 건강하지 못한 일이다. 


학교에도 불안한 아이들은 흔하게 있다. 불안은 다양한 원인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불안'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더라도 보이는 모습은 아이마다 천자만별이다. 발표불안,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불안해하는 아이, 큰 소리에 불안을 느끼는 아이, 사람이 많은 환경에서 불안을 느끼는 아이 등등 각자의 사정으로부터 불안이 탄생한다. 


A는 처음 상담실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잔뜩 얼어있었다. 선택적 함묵증을 가진 아이였다. 언어능력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상황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선택적 함묵증을 가진 아이를 몇 번 만나본 적이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얼어있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A는 상담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까지 마치 로봇이 움직이듯이 몸을 움직였다. 내 시선이 닿으면 A는 그대로 얼어붙어서 아주 천천히 눈만 껌뻑거렸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보였다. 


선택적 함묵증이 있는 아이라고 하더라도 A 이전에 만났던 아이들은 내가 어떤 질문을 했을 때 고갯짓으로라도 의사표현을 하곤 했다. 그러나 A와의 첫 만남에서 A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 그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언어로 상담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A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인데, A와의 상담이 끝나고 나면 기가 쏙 빨려 한동안 멍해지곤 했다. 


5회기가 넘어가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으면서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고갯짓이 얼마나 반갑던지, 아기가 처음 걷는 모습을 관찰한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 싶었다. 그때 나는 조금 흥분한 나머지 A에게 평소보다 더 많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자 A는 곧 고갯짓을 그만두었다. 기다리고 있던 아이의 표현을 관찰하고 나니 기쁘고 흥분된 마음에 페이스 조절을 잘 하지 못했던 것이다. 



* 나의 성찰

한 걸음 나아갔다 다시 되돌아갔다를 반복하며 결국 천천히 우상향 하는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 달라진 모습이 관찰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 아이의 변화에 너무 흥분하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상담의 목표를 보고 천천히 나아갈 것.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A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상담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A는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상담시간에는 커다란 보석십자수 작품을 같이 만들었다. 얼어붙은 신체반응을 보였던 A도 천천히 긴장을 낮추고 보석십자수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긴장도가 조금 낮아졌다고 느껴질 때쯤 한 번씩 A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침묵하는 날이 이어졌지만, 그래도 고갯짓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는 했다. 그렇게 아주 아주 조금씩 A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면서 상담자인 내가 이해한 A의 마음에 대해서 반영해 준 적이 있었다. A가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받게 되는 시선이나 반응으로 인한 불편감이나 부끄러움,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느낄 답답함과 속상함 같은 것들을 읽어준 것이다. 


내 말을 듣고 A는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담자가 울면 눈물의 의미를 묻고는 하는데, A가 흘린 눈물의 이유가 무엇인지 듣지는 못했다. 어떤 의미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A와의 상담 중에 가장 강한 감정의 표현이 나타났던 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바라건대 그때 A가 '내가 마음껏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면 좋겠다.  


A는 불안 수준이 매우 높은 아이였기 때문에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상담을 하면서 병원에 방문할 것을 권유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머님께서는 제법 수용적이셨다. 그러나 아버님의 극심한 반대로 A는 나와의 상담이 끝날 때까지 병원에 가지 못했다. 선택적 함묵증을 가진 아이들은 대개 가정에서는 말을 잘하기 때문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학교에서는 수줍음이 조금 많아서 그런 것뿐,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A의 아버님께서도 '아무 문제없는 아이를 왜 아픈 애 취급하냐'며 노발대발하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A와의 상담은 8개월가량 이어졌다. 종결할 때까지도 A와의 상담시간은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했다. 그래도 A에게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회기를 거듭하면서 눈을 맞추는 것도 자연스러워졌고, 상담실에 들어오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졌다. 침묵하더라도 고갯짓으로는 자기 생각을 표현했고, 그림이나 글을 통해 표현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단답이기는 했어도 목소리를 내어 이야기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놀이터에서 같이 노는 친구가 한 명 생겨서, 어머님으로부터 'A가 어느 날 친구랑 놀고 들어가겠다는 전화를 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내가 학교를 옮겨가게 되면서 종결하게 된 것이라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고 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약물치료를 병행했으면 훨씬 시너지를 내면서 눈에 보이는 변화가 더 생겼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 사례이다. 마지막 부모상담을 할 때 어머님께 계속 상담을 이어서 받고, 병원 내방도 다시 한번 고려해 볼 것을 당부드렸는데 그 뒤로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는 소식이 이어지지 않았다.


긴장이 감도는 새학기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하는 이 무렵, A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을 A가 '내가 말하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나'싶게 어디서든 마음껏 목소리를 내며 수다쟁이로 살아가고 있기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사진: UnsplashArtur Rutkowski


  

이전 02화 텅 빈 느낌만 들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