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적인 아이 H 이야기
"와 씨, 선생님 인성 좀 보소?"
6학년 학생이었던 H의 말이다. 그리고 H가 한 말에 나오는 선생님이 바로 나다.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상담시간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그만 핸드폰을 집어넣으라는 내 말에 발끈한 H의 반응이었다.
H는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핸드폰 게임을 하며 보냈다. H는 어울려 노는 친구가 없었다. 형제가 없는 외동아이였고, 가족은 함께 살고 있는 아버지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늦은 밤 일을 하러 나가셨고,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보낼 수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친구도, 함께 시간을 보내줄 가족도 없었던 H는 인간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을 사회적 욕구를 해소할만한 창구가 없었다. 다만 게임만이 유일하게 그 역할을 해주었다. H는 지각이 잦았고, 수업시간에도 대놓고 엎드려 잠을 자곤 했다. 담임교사가 수업태도에 대해 지적하면 욕을 하며 화를 냈다. 아무리 넓은 마음을 가진 담임교사라고 하더라도 반복되는 H의 행동을 어여삐 여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러 명의 무리 안에 있을 때와, 1대 1로 만났을 때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있는데 H가 그런 아이였다. 교실 안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있고, 그 안에서 H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열등감과 불안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분노와 반항행동을 택했다. H가 자신의 약함을 숨기기 위해 선택한 행동은 누구에게도 사랑받기 힘든 행동이었고, H 본인 스스로조차 그 행동에 대해서 자신을 변호하지 못했다.
내게 "인성 좀 보소"를 날렸던 그날은 집단상담이 있던 날이었다. 보는 눈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개인상담에서 만난 H의 모습은 그날과는 사뭇 달랐다. 보는 눈은 나뿐이었던 개인상담에서는 H의 반항기가 희미해졌고, 오히려 아주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칭찬받으려고 하고, 자신이 그리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칭찬할만한 구석을 찾는 게 어려운 아이였지만, 개인상담 때 보이는 몇몇 모습들을 끄집어내어 칭찬을 해주니 유치원생 꼬마가 칭찬받고 싶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란 듯이 내가 칭찬한 행동들을 하고는 했다.
H는 담임교사에게 자신이 한 행동들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담임교사에게 자신이 상처를 줬으니, 선생님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도 고백했다. H의 반항적인 태도에 학교에서 적잖이 연락을 받았을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적어도 H가 내 앞에서 고해성사하듯 늘어놓았던 반성은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 나의 성찰
반항적이고, 문제행동이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 중립적인 태도를 잃는 순간도 있다. 마음 한 편으로는 '네가 한 그 행동은 누구라도 사랑하기 힘든 행동'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설사 그런 생각이 한 번씩 들더라도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 떠올린다. 보편의 기준으로는 사랑하기 힘든 아이일지라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 내 자리의 책무일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에 대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그 아이를 이미 훈계하고 다그쳤을 테니, 적어도 나는 '얘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걸까?'에 대해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로부터 상처받고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향성을 잃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H와의 개인상담에서 꾸준히 견지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일관된 규칙이었다. 상담실 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는 한계를 명확히 하려고 했다. 불편하더라도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느끼고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H는 좋은 점도 분명 있는 아이였지만, 충동성이 높았기 때문에 규칙위반이 잦았고 제멋대로 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강했다. H가 가진 좋은 점들을 발휘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내 맘대로 하고 싶더라도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음을 체화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단호함만으로 무장하고 만날 수는 없었다. H는 사회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던 아이였기 때문에, 그 결핍이 채워질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 필요했다. 다행히 H는 상담실에 오는 것을 좋아했고, 상담관계 안에서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과정이 이어지다 보니,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제한을 하면 곧 행동을 수정하는 데까지 다다랐다. 물론 그 과정은 지난했다. 말꼬리 붙들고 늘어지기, 불평불만 쏟기, 상담테이블에 엎드려 묵언시위하기 등등 긴 여정이 있었음을 밝힌다. 결과적으로 H가 필요로 했던 것은 진득하게 자신만을 바라봐 줄 애정과 관심, 거기에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단호한 경계와 규칙이었다.
H와의 상담이 이어지던 어느 날, H의 담임교사가 상담실을 찾아왔다.
"H 수업태도가 예전보다 좋아졌어요. 선생님이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어요."
내심 뿌듯해지고 기분 좋은 말이었지만, 변화를 일으킨 가장 큰 힘은 아이로부터 나온 것일 테다. 변화의 주체는 늘 내담자 자신이니까. 조금이나마 다수 안에서의 모습도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H가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겠다는 희망과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학을 간 이후로 소식을 들을 수는 없지만, H가 되고 싶어 했던 '착한 아들, 멋있는 어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나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그 아이의 마음이 분노와 후회, 자책감 대신 기쁨과 만족감, 자부심 같은 것들로 채워지고 있기를 바란다.
사진: Unsplash의Andre Hu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