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시기에 갑작스러운 파업선언
선행이 당연시되고 있는 요즘,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관이네 뭐네 과도한 선행을 달리는 천재들이 있다.
수학이라는 것이 차분히 배워나가다 보면 금세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게 되고
커다란 가방을 멘 초등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무난하게 계속 공부해 나가면 좋으련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엄마들은 슬슬 불안해진다.
사춘기가 너무 세게 오면 안 되는데...
가장 흔한 경우는 아이가 이제 그만 수학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때 파업하는 것은 그나마 사춘기를 슬슬 지나면서 수습이 가능한데,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중2, 3 때 사춘기가 오면 엄마는 멘붕이 된다.
사례 1. 둘째는 영재공부시키지 않으려고요.
첫째는 어릴 때부터 똑똑했다. 어느 학원엘 보내도 100점은 기본이고 이해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래서 더 나은 공부를 시키다 보니 영재고 준비하는 학원에 보내게 되었다. 여기서도 무난히 잘해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아이가 숙제도 제대로 안 하고 집에서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고 학원에서 평가도 떨어지기만 했다. 영재학교 준비가 맞지 않나 싶어서 고등선행과정으로 바꿨는데, 미적분만 벌써 1년째다. 그냥 일반고에 가겠다고 하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둘째 녀석도 공부를 곧잘 하지만 형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둘째에게 영재교육을 시켜보는 건 어떠냐는 거였다. 첫째에게 드는 학원비도 만만치 않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 더 돈이 들 텐데, 그리고 둘째마저 영재공부에서 길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냥 자기 과정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둘째. 이 녀석만큼은 너무 튀지 않게 일반교육과정을 따라갔으면 좋겠는데 선행과정 단계가 높아질수록 마음에는 걱정이 더 쌓여만 간다.
나는 둘째 녀석의 학원 선생님이다.
너무 예쁘고 열심히 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어머님은 상담을 오실 때마다 첫째 걱정만 한가득 하고 가신다. 첫째가 영특하니 기대를 많이 하신 탓에 더 실망감도 크겠지. 하지만 나는 내 학생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은데, 어머님은 그냥 의사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사실 그렇게 막 뛰어나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공부는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도 둘째이다 보니 감정이입이 되어 좀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첫째는 영재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사춘기가 오고 방향을 잃은 것 같다. 그때는 더 시키기보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고 앞으로의 진로를 같이 고민해 보는 것이 좋은데, 사실 부모님이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그동안의 기대치가 커서 잘 안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는 전문가에게 진로상담을 받아보길 권한다. 아이와 직접적으로 미래에 대해 전문적인 상담을 해줄 수 있는 곳은 요즘 좀 많아지는 추세다.
둘째 이야기로 돌아와서 같은 반 친구들은 다음 과정으로 영재반으로 넘어갔다. 사실 영재교육은 영재고를 가기 위한 것도 있지만 사고력 수학이라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이론들을 배우고 증명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기초과정은 일반고든 자사고든 진로와 상관없이 배워보길 권한다. 생각의 틀을 바꿔준다는 느낌이 크고 단순히 배워서 연습하는 진도과정보다 응용성이 높아지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이 하는 공부를 내심 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래도 엄마가 힘들어할까 봐 그냥 엄마가 하라는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도 있는 것 같은 속이 깊은 아이다. 그래서 안타깝다. 뭘 해도 즐겁게 배울 아이인데..
가끔은 결핍도 큰 동기가 된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줄게 보다는 잘하는 사람을 밀어줘야지 하는 형제간의 경쟁이 학구열을 높이는 법이다. 사실 위의 학생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면이 있지 않을까?
'형은 했는데, 나는 왜 안되지?'
재능도 중요하지만 공부에서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수학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 열심히 한다면 다 배워갈 수 있는 것이 수학공부다. 그리고 의사가 되라니.. 무난하게? 아이의 입장은 들어보지 않으신 것 같다. 지금 속을 썩이는 형이 더 신경이 쓰이시겠지만, 그 안에서 둘째는 자기의 의견을 잘 이야기할 수 나 있으려는지 상담 때마다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사례 2. 다시 시작하는 공부
초등학교 때부터 똑똑했던 아이는 초6이 되자 더 이상 수학을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이 되니 슬슬 다시 수학공부를 다시 해보겠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학원을 알아보니 기본과정을 나가면서 심화과정은 개별과정으로 해준다고 해서 보내게 되었다. 진도도 빠르고 역시나 성취도가 높다. 그런데,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두신다고 한다. 아이는 다시 학원에 결석하기 시작했다. 또 방황이 시작되려는 건지 걱정이 앞선다.
내가 잠시 근무했던 학원에서 만난 친구다. 학원과의 문제로 6개월 정도 짧게 근무하고 관두게 되어 이 친구가 가장 맘에 걸렸다. 똑똑한 친구였는데, 자존심이 강했다. 본인의 문제풀이 방식을 잘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맡기 전에 인수인계받을 때 담당 선생님은 아이가 반항적이고 풀이도 별로라고 하셨다. 그런데, 풀이과정을 잘 살펴보고 그 방법과 내 풀이방법을 비교해 주고 수학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풀면서 발전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에, 네 방법도 좋지만 다른 풀이들도 익혀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인수인계내용과는 다르게 빠르게 말을 알아듣고 숙제도 잘하고 개인 진도시간에 다른 친구들보다 몇 배나 빠르게 심화문제집들을 돌파해 나갔다. 내가 있던 6개월 동안 중학교 수학 3년 치 심화문제집을 다 끝냈을 정도니까.
이 친구는 풀이를 지적하기보다는 그 풀이를 살펴봐주고 안 되는 이유를 설명받고 다른 풀이도 배우고 하는 존중의 과정이 필요했다. 사춘기가 오기도 했고, 워낙 의견이 강한 친구이기는 했다. 그런 학생에게 선생님이 강압적으로 대하면 엇나가기 쉽다. 학원과의 마찰이 있어 갑작스럽게 학원을 그만두게 되고, 다른 선생님이 내신준비를 해주다 보니 아이의 결석이 잦아졌다.
우리는 흔히 아이가 선생님을 탄다 라는 말을 쓴다. 마음이 여리거나 이렇게 자존심이 강하거나 하면 선생님에 따라 반항하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기 때문에 신뢰하는 누군가가 꼭 필요한 것이다.
어디서든 잘할 수 있는 녀석이라 생각하지만, 선생님을 찾는 과정이 힘들지 않길 기도해야 했다.
초등반에도 의대반이 있다고 한다. 진짜 똑똑한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고등과정을 그렇게 미리 배우는 것이 과연 좋을까? 사춘기 이전에 아이들은 엄마가 하라고 하고 천재구나~ 칭찬해 주면 뭐든 할 것처럼 공부한다. 하지만 공부는 쉬운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엉덩이공부라는 말이 있겠는가.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는 것. 아이는 기대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해볼 만한 일도, 좋은 풍경이 있는 여행도,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많은 흥미로운 일들도 많다. 그저 공부에만 어릴 때부터 갇혀있다 보면 그만큼 아이의 시선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사춘기의 반항과 폐업은 그런 아이들에게 인생을 건 전환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뭘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이 근본적인 물음에 스스로 대답할 만한 내면의 성장을 이루고 있을지 우리 아이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학생정도 되면 철든 아이들이 참 많다. 친구처럼 대화가 가능하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기본은 아이가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다. 물론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나이가 든다고 해서 다 어른스러운 것은 아닌 것처럼 대화의 방식과 양은 성장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저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고민이 있는지 지금 하는 공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하는 것인지 요즘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중간중간 이야기해 본다.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통은 관계에 가장 기본이다.
쉽지 않은 공부를 하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런 대화가 어쩌면 훨씬 더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