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가 얼마나 배려를 받느냐(남이 나를 얼마나 배려하느냐)’에는 예민하지만 ‘내가 남을 얼마나 배려하는지’에는 둔감한 편이다. 배려가 부족하다 싶은 타인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이기적”이라고 선고하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면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변론하려 든다. 자신을 정당화할 이유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상대가 확인할 수 없는 선에서 사실이나 진심을 각색할 수도 있고, 엉터리는 아닐 정도의 거짓말을 보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생각해보면 변론 내용이 얼마나 그럴싸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거의 모든 경우 배려하는 쪽이 ‘옳은 것’으로 여겨지고, 이 믿음 자체도 옳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영화 <원더(Wonder)>(2017)에서 교사 브라운(다비드 딕스)은 학생들에게 첫 수업에서 “옮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땐 친철함을 택하라(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라는 교훈을 알려준다. 옳음과 친절함이 상충할 수 있는 태도인가 싶지만 두 가지는 의외로 쉽게 충돌한다.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거나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고(그러기로 작정하기도 하고), 친절을 포기하고 남에게 해를 끼친 행동마저 옳은(정당한) 것이었다고 증명하려 드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다. 옳음 혹은 옳다고 믿는 그 무엇은 친절과 달리 이렇게 타인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옳은 사람보다 친절한 사람이 돼라.’ <원더>는 이 당부가 어린아이들을 통해 실천되어 가는 이야기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못한’ 아이
수업 첫날 학생들에게 친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사 브라운. 영화 <원더> 스틸컷
브라운의 교실에는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라는 소년이 있다. 이제 10살이 된 어기는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스물일곱 번 수술을 받았지만 그의 표현대로라면 “평범해지지는 못했다”. 어기가 정의하는 평범한 아이란 ‘운동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 다른 아이들이 도망가지 않고, 어디를 가더라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아이’다. 어기는 자신을 ‘평범한 아이’로 만들어주는 우주인 헬멧과 핼러윈 분장을 좋아한다.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얼굴만 빼면 어기는 평범한 아이다. 우주인을 꿈꾸고, 아빠와 광선검 싸움을 하고, 누나 약 올리기를 좋아하는.
줄곧 집에서 어기를 직접 가르쳐온 엄마 이자벨(줄리아 로버츠)은 아들이 초등 5학년 나이가 되자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아빠 네이트(오웬 윌슨)는 “순진한 양을 도살장으로 보내는 꼴”이라며 반대하지만 “기다려줄수록 시작만 더 어려워질 뿐”이라는 아내를 이기지는 못한다. 엄마라고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어기의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날 이자벨은 아들의 뒷모습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며 단 한 가지를 기도한다. ‘아이들의 친절’을.
학생들 사이로 혼자 등교하는 어기(가운데)의 뒷모습. 영화 <원더> 스틸컷
교장은 그동안 학교를 다니지 않아 친구가 없는 어기를 위해 입학 전에 미리 동급생 세 명을 소개해줬다. 외톨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인데 이 세 아이는 우리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하는 보통의 유형들을 보여준다. 대놓고 놀리는 아이(줄리안), 무례하게 굴지 않지만 특별히 관심도 주지 않는 아이(샬롯), 호기심이나 호감을 느끼면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잭). 이 중에서도 줄리안은 어른들 앞에서는 모범생인 척 행동하면서 뒤에서는 친구들을 깔보거나 괴롭히는 아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아이’가 무엇인 줄 알고 흉내를 낼 뿐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줄리안에게는 없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학교생활은 역시나 고달프다. 줄리안처럼 괴롭히는 아이들 때문만이 아니다. 샬롯을 비롯한 거의 모두가 슬금슬금 어기를 피하고 말도 붙이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잭은 눈치만 본다. 어기가 학교에서 가장 싫어하는 장소는 괴롭히거나 비웃는 아이들이 있는 교실이 아니라 ‘모두가 모이는’ 안뜰이다. 그곳에 어기를 못살게 구는 아이는 없다. 그저 어기를 보고는 고개를 돌리고 다시 쳐다볼 뿐인데 이런 반응들이 어기를 무엇보다 힘들게 한다. 자신이 평범해질 수 없다고 인정하는 어기는 아이들에게 “괜찮아. 나도 이상한 거 알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기회조차 없다. 아이들이 다가오지도 않으니까.
가장 쉬운 일과 가장 어려운 일
학교 식당에서 어기를 쳐다보는 아이들. 영화 <원더> 스틸컷
배려라는 행동은 대개 존중이라는 마음에서 나온다. 존중하지 않으면서 배려할 수는 있어도, 존중하면서 배려하지 않기는 어렵다.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상대를 존중하지도 않는 사람일 것이다. 보통의 사회생활에서 ‘나쁜 사람’이란 배려가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가 많다. 외적으로는 무례한 사람이고, 내적으로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다. 적극적 배려라고 할 수 있는 친절은 역시 존중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실천을 위해서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걸 <원더>의 아이들은 보여준다. 모두가 놀리며 따돌리는 어기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어기와 한 조가 되겠다며 손을 들고, 생전 폭력이라곤 써본 적 없을 법한 아이가 어기를 괴롭히는 친구에게 주먹을 날리고 정학을 맞는다. 모두 어기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어기와 친구가 되고 싶고, 또 이미 친구라서 한 행동이다.
<원더>는 아직 어려서 미숙한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더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를 인용한, 유쾌한 은유다. 여기에 등장하는 ‘배려 없는 어른’의 모습은 영악하다 못해 추하다. 줄리안의 엄마는 아들이 어기를 괴롭힌 사실을 확인하고도 두둔하기에 급급한데, 그냥 감싸는 게 아니라 줄리안이 어기 때문에 밤마다 악몽을 꾸고 소아심리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거짓말로 맞선다.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얕잡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고 살라는 거냐”고 따진다. 어기를 괴물로 묘사한 아들의 그림들은 ‘고작 낙서 몇 장’일 뿐이다. 그에게 교장은 “어기는 얼굴을 바꿀 수 없어요. 그러면 우리가 보는 법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한다.
우주인 헬맷을 쓴 어기가 엄마, 아빠, 누나와 함께 학교로 가고 있는 모습. 영화 <원더> 스틸컷
나쁜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고, 좋은 사람이 되기는 더 어렵다. 그리고 가장 쉬운 일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되니까.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나쁜 사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원더>에서 어기에 대한 아이들의 태도 변화는 브라운 선생의 두 번째 교훈과 맞물린다. ‘너의 행동은 너의 기념물이다(Your deeds are your monuments).’ 고대 이집트 무덤 벽에서 발견됐다는 이 문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면서 마음만 있을 뿐 행동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얘기도 된다. 영화 속 브라운 선생의 마지막 교훈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친절하라’다. 이 멋진 당부를 실천하려면 분명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