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봉 Aug 01. 2020

아파트 전셋값으로 주택 구입

집을 사는 것은 동네를 사는 것이다

<티끌모아 로맨스>라는 영화를 좋아했다. 청년백수와 지독한 짠순이가 만나 그야말로 티끌이라도 긁어모으는 생계형 청춘 로맨스 영화였는데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들의 궁색함과 기상천외한 돈벌이에 박장대소했지만 사실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실업 시대 청춘들의 초상을 담은 영화 이야기는 바로 내 이야기이자 아내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낭만적인 성향을 타고난 나는 대학 때는 글을 써보겠다고 깝죽거렸고 졸업 후에는 라디오 방송을 하겠다고 몇 해를 거의 반백수에 다름없이 지냈다. 그러다 가까스로 직장을 구해 8년을 일했지만 모은 돈은 별로 없었다. 돈을 모으는 방법도 이유도 몰랐으니까. 그나마 엄마와 함께 살며 집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엄마와 살던 집은 임대아파트였는데, IMF 때 집이 경매로 넘어간 후 우여곡절 끝에 얻은 집이었다. 엄마는 늘 집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반면 대책 없이 낙천적인 나는 임대아파트도 나름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낭만적인 성향은 긍정적으로 발휘되었을 텐데, 불행히 그러지 못했다.


아내도 20대 초 서울로 올라와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했지만 월셋집을 면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를 만날 때까지 서울 홍은동 단칸방에서 10여 년 자취 생활을 해오던 차였다. 37살. 동갑인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며 둘이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봤다. 역시나 전셋집 하나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둘 다 집에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나는 홀로 계신 어머님께 앞으로도 꾸준히 용돈을 드려야 했다.


그럼에도 낙천적인 건지 세상 물정 모르는 건지 결혼 초부터 아내와 나는 주택을 사겠다고 이 동네 저 동네를 기웃거렸다. 정 안되면 '옥탑방이라도 좋다'는 아내가 한편으로는 귀여웠지만 나보다 더한 '현실감각 제로의 낭만주의자’로 보였다. 공포가 엄습해왔다. 옥탑방에서 현실의 땅으로 아내가 착륙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둘 중 하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는데, 그나마 내가 차리는 게 더 빨라 보였다. 물론 나도 오락가락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말을 한 건 당초 나였으니까.


"뭐하러 집을 사? 전세로 살면서 이 동네 저 동네 새로운 동네에서 살면 좋지 않나?"


국가의 도움으로 간신히 아파트 전셋집을 구했고 살다 보니 '내 집'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네 번의 이사만에 우리가 원했던 단독 주택을 장만했다. 쓸 거 안 쓰고 먹을 거 안 먹고 지독하게 돈을 모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저축도 하고 분수에 맞춰 사는 법도 터득했다.


현실감각도 없고 저축 말곤 돈을 불리는 방법도 전혀 몰랐던 우리는 어떻게 주택을 장만할 수 있었을까.

벌이가 많지는 않았지만 둘 다 직장생활을 계속하며 안정적인 수익이 있었다.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양육비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원도심의 작은 주택을 우리 집으로 선택했다.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


2017년 말, 인천에 있는 22평 아파트 전셋값으로 구도심에 있는 대지 26평, 건평 15평 2층 주택을 샀다. 구도심의 작은 주택은 아파트처럼 미래 투자가치는 덜해도 지금 내가 만족하며 살 수 있는 현재의 가치로는 훌륭했다. 결혼 초부터 주택을 생각했던 차라, '주택은 값이 안 오를 텐데.'라는 주위분들의 우려는 전혀 상관없었다. 우리에겐 현재 살 우리 집이 필요했던 것이지, 돈이 되어줄 미래의 집이 필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요즘 미친듯한 부동산 대란, 전세 대란을 보면 남들 아파트값 올라서 부럽다는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내 집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셋집 구하러 대출에 또 대출, 동분서주했던 지나온 일은 생각만 해도 넌덜머리가 난다. 투기로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야 집값에 연연하겠지만, 삶의 공간으로 집을 선택한 이들에겐 안정적인 내 집 한 칸 보다 소중한 게 있을 리 없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살던 집값이 오른다고 싫어할 일은 없을 테니까. 무엇이 더 소중한가 가치의 문제이고 그 가치에 따른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인천 구도심 주택을 구입해 살아보니 집을 '산' 것은 동네를 '사는' 거란 걸 깨닫게 된다. 집은 삶 그 자체이고 내 집이 위치한 동네는 브랜드가 아니라 하나의 관계망이다. 구도심 작은 동네의 관계망이 어떨 땐 불편하기도 하고 어떨 땐 즐겁기도 하다. 인천 원도심 단독주택을 사게 된 이야기 그리고 거기서 살며 느끼는 희로애락을 들려 드리겠다.




구도심 주택살이 봉봉 TIP


1. 주택 구매 시 살고자 하는 '집'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동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개발 등 변화 가능성은 없는지, 근처에 빌라가 들어설 여지는 없는지를 잘 살펴보세요. 평소 마음에 드는 동네를 자주 찾아가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는 등 발품팔이가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2. 주택 매매 가격을 제공하는 어플들을 활용해보세요. 밸류맵, 디스코 등의 어플을 통해 전국 토지, 건물 실거래가를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에 들어가지 않고도 이 동네는 대략 얼마에 가격이 형성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