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메일은 타이밍이다

메일 발송의 과학과 미학

by 심내음

당신은 이사님이 지시한 보고서를 완성하였다. 시계를 보니 16시 47분. 17시에 일이 있어서 퇴근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오늘 아침은 7시에 출근을 했지만) 퇴근 전에 보고서를 끝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메일의 “Send” 버튼을 누르려하다가 잠시 고민에 빠진다. 당신이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 아니라면 고민에 빠지는 게 맞다. 고민에 빠져야 한다. 17시에 보내는 메일과 19시에 보내는 메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갑자기 걱정이 들어 먼저 말씀을 드리는데 지금 이 글은 직장생활의 잔머리에 대한 글이 아니다. 내가 아는 직장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말 토씨 하나 행동 하나가 당신의 상사, 동료, 후배들에게 모두 다른 의미를 준다. 그런 차원에서 메일을 보내는 타이밍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물론 각 회사는 모두 다른 사풍과 분위기가 있으니 그런 부분은 감안하여 읽어주시면 좋겠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서 몇 가지 옵션을 보기로 한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17시에 퇴근을 해야 하는데 다행히 그전에 끝난 보고서 당연히 그대로 17시에 보내는 옵션이 하나 있다. 그리고 Adanced Technology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Normal Tech Skill을 활용하여 예약발송 기능을 사용, 19시에 메일이 발송되도록 한다. 사실 예약발송 기능을 쓸 경우 정시 발송은 너무 예약발송이 티가 나므로 19시에 보낼 거면 18시 50분이나 19시 10분으로 시간 세팅을 해놓는 것이 좋다. 물론 1분 단위 5분 단위까지 세팅이 되면 제일 좋겠으나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예약발송은 10분 단위까지 밖에 설정이 안 된다. 혹시 높으신 분들이 예약발송임을 쉽게 인지하게 위해 처음부터 1분 단위까지 세팅은 안되게 개발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쩝~ 아무튼 편의상 이 글에서는 그냥 17시와 19시로 나누기로 한다.

다시 한번 리마인드 차원에서 말씀드리면 회사 생활은 간단치 않다. 특히나 회사 규모가 크면 클수록 확률적으로 신경 써야 될 사람과 환경들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 관련하여 17시가 맞는지 19시(예약발송)가 맞는지 결정을 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condition 몇 개를 말씀드리겠다. 이 보고서는 내일 10시 회의에 쓸 회의 자료이고 당신의 이사님은 오늘 저녁 거래선과의 식사 약속 때문에 18시에 퇴근 예정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사는 보통 아침 7:30분에 출근을 한다. 보고서는 30페이지짜리로 당신의 이사에게 이 정도 분량을 읽을 시간은 30분 정도 필요하며 당신의 이사는 물론 다른 보통 회사의 임원들처럼 무척 바쁘고 회의도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말한 대로 당신은 오늘 평소보다 조금 일찍 17시에 나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신은 이 보고서를 19시 예약발송으로 보내야 한다. 앞에서 말씀드린 18시 50분과 19시 10분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드리고 왜 19시 예약발송이 정답인지 말씀드리겠다. 19시 송부 시점 관련 대개 예약발송 시 19시 10분과 18시 50분 2가지 초이스가 있는데 18시 50분보다는 19시 10분이 좋다. 왜냐하면 10분 차이인데 기왕이면 더 늦은 시간의 발송시간 숫자를 보여주는 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는 것을 어필하는데 좋다. 어차피 사람은 메일함에서 메일을 볼 때 19시 10분이나 19시 50분을 앞 시간만 보고 19시로 보통 인지하고 18시 10분이나 18시 50분을 18시만 기억한다. 그러니까 18시 50분에 보낼 거면 19시 10분이 낫다. 단, 데드라인이 19시가 아니라면. 물론 데드라인이 19시면 18시 50분에 보내셔야겠다. 19시 데드라인인데 19시에 보내는 것도 매너가 아니다. 1분이라도 빨리 보내셔야 한다.

지금부터 19시 발송이 정답인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 아까 말씀드린 당신이 처한 여러 가지 사항에서 19시 송부의 장점 곧 17시 송부의 단점에 대해 열거하겠다.


1. 이사님이 17시 당신이 퇴근한 이후 보고서에 관련 당신을 찾을 경우 당신은 이미 퇴근하여 이사님의 콜에 대응을 할 수 없다

2. 1번과 같이 이사님의 콜이 있을 시 본의 아니게 당신은 당신이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것을 이사님께 알리게 될 수 있다

3. 19시면 당신의 이사님이 거래선과 저녁 식사를 위해 사무실을 떠난 후에 받게 되므로 아마도 19시 혹은 더 이후에 휴대폰으로 대략적인 것만 확인하시게 된다. 그래서 이사님의 머릿속에 당신이 보고서를 완료했다는 사실만 오늘 남고 자세한 얘기는 내일 아침에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 이사님이 오늘 몇 시까지라고 데드라인을 정해준 보고서가 아니기 때문에 내일 10시 회의 시작 전 1번 정도 이사님과 리뷰 미팅을 할 것이고 미팅이 10시이기 때문에 추가로 보고서를 수정하는 등의 부가 작업은 안 해도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케바케로 보고서가 너무 엉망이면 회의 자체가 미뤄지는 대참사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의 실력에 대해 냉정한 잣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당신이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말하고 있다(^^;)


가장 큰 건 지금 말한 4가지 정도이고 굳이 19시 송부의 단점, 곧 17시 송부의 장점을 뽑자면 17시 송부를 할 경우 이사님은 당신을 손이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사님 머릿속에 오늘 저녁까지만 보고서를 완성하면 된다는 기준이 있을 경우에 얘기지만 이것도 Risk가 있다. 직장생활에서 데드라인은 중요한데 상사가 정해주는 데드라인보다 훨씬 빨리 일을 마칠경우 잘했다는 칭찬보다 일을 대충한 건 아닌가 혹은 전략이나 개선책에 대해 생각을 많이 안 하고 빨리만 만든 것은 아닌지 등등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상식적이지만 빠른 것과 높은 완성도는 비례하기가 쉽지 않고 통상 반비례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필자가 아는 큰 회사의 높으신 분 중에는 자신의 상사가 어느 타이밍에 본인의 메일을 보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철저하게 생각하고 메일을 발송하시는 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이번 달 매출 차질이 나서 안 좋은 내용을 보고하는데 상사가 그나마 가장 기분과 컨디션이 좋을 때를 분석하여 그 상사가 해외 출장을 가기 전 라운지에서 메일을 열어볼 타이밍에 맞추어 메일을 보낸다. 더 중요한 메일의 경우에는 수행하는 다른 직원과 운전기사 등과 연락을 하면서 위치나 상황을 파악하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나온 영화배우 이정재 톤으로)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냐”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내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실이고 분명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이번 달 매출 차질을 보고하신 분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면 그분은 차질이 난 매출에 대한 원인 분석을 이미 완료하여 대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차피 벌어진 차질에 대한 것을 좋지 않은 타이밍에 보고하여 불필요한 추가 보고나 감정적인 소모(매출 차질을 보고 생기는 상사의 역정 등)가 생기는 것보다 지나간 매출 차질에 대한 것은 최소화하고 다음 달 매출에 대해 시간과 머리를 더 쓰기 위해 노력을 하신 차원이라고 이해를 해주시면 되겠다.

오늘도 수많은 보고서와 메일을 쓰지만 그중에 몇 개는 몇 시에 보내면 될지 고민을 한다. 직장생활은 관계의 미학과 과학이고 그래서 메일을 보내는 시점은 오늘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keyword
이전 09화Market Share와 Seg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