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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잘못되었다

by 심내음

내음 씨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에서 거실로 들어서면서 미닫이 문을 열었을 때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딱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내음 씨는 거실과 주방 사이로 걸어갔다. 식탁에서 아내와 둘째가 밥을 먹고 있었다. 뉴스도 음악도 흘러나오지 않았고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건너편을 보았다. 주로 나와 큰 딸이 먹는 자리이다. 큰 딸 자리에는 밥에 숟가락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밥에 된장 같은 양념이 묻어 있었다. 분명 큰 딸이 먹다가 자리를 뜬 것 같았다.


세 명이 먹다가 한 명이 자리를 비운 것 좋지 않은 상황이다. 등 뒤에 있는 욕실 쪽을 흘끗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불이 꺼진 채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큰 딸이 밥을 먹다가 욕실로 간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제발 그러기를 바라며 쳐다보았지만 절망스럽게도 그건 아니었다.


'싸운 게 틀림없군. 또 엄마와 딸의 전쟁이구나'


난 무슨 일일까 물어볼까 하고 말을 꺼내려하다가 간신히 그 질문을 목구멍으로 눌러 삼켰다. 내가 궁금하다고 이런 걸 물어보면 분명 설명하면서 또 화가 폭발할 것이고 그 불똥이 나에게로 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화가 나서 거기다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나는 간신히 말을 참고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았다. 내 자리에는 밥과 숟가락이 놓여 있었다. 분명 둘째가 가져다 놓은 것이리라.


나는 밥과 반찬을 입으로 욱여넣었다. 빨리 먹고 방으로 들어가던가 산책을 핑계로 집을 나가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다. 집안과 식탁의 무겁고 어두운 기운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밥을 절반쯤 먹었을 때 아내가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꺼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어야 했는데. 왜 한 그릇을 다 먹으려 한 걸까. 반만 먹고 일어났어야 했는데'


난 정말 후회스러웠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도 전이었지만 식탁에서 이런 상황에서 아내의 말을 듣는다는 게 좋은 일일 리 없다는 것은 이제까지 경험상 너무도 자명했다.


"1호 나와서 밥 먹어라 이제. 2호 다 먹었다"

아내는 큰 딸을 부르는 것 같았다. 큰 딸은 왜 먹다가 도중에 방에 들어간걸가. 왜 둘째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방에 있었던 걸까.


"아.. 이제 나가도 돼? 오키~"


첫째의 목소리는 의의로 밝았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다. 혼란스러웠다. 첫째는 방에서 나오자 턱 하니 PC를 켜고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오는 O튜브를 보며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PC볼륨 좀 줄여라. 2호 밥은 다 먹었어도 아직 나갈 때까지 시간이 좀 남았어. 오늘 시험인데 정신없어"


이제야 알았다. 둘째가 오늘 시험 때문에 점심을 먹어가며 마지막까지 공부 중이었는데 시험이 끝난 첫째가 밥을 먹으면서 뭘 보는 걸 좋아해서 그게 둘째에게 방해가 되니 조금 이따가 먹으라고 한 모양이다. 휴우.... 한시름 놓았다. 난 언제나 집안에서 편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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