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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의 동지들

난 외롭지 않다. 혼자가 아니므로.

by 심내음

내음 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다. 방문을 나와 현관문, 엘리베이터, 아파트 외곽 문을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대개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춥고 외로운 것 같다. 괜히 내음 씨 혼자 고생하는 것 같고 내음 씨 혼자 이렇게 사는 것 같아 가끔 우울할 때가 있다. 물론 내음 씨는 더 일찍 출근하시고 어 어려운데도 열심히 생활하시는 분들에게 혼날 소리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내음 씨는 더 깊이 반성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혼자 기다리다 탈 경우도 있지만 대개 1명 정도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 정말 반가운 그 사람, 같은 사람일 때도 있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일 때도 많은 것 같은데 더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비몽사몽 좀비처럼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겨 버스정류장에 와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의 존재만 인지하고 외모나 더 상세한 부분은 아예 관심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을 본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내음 씨에게 남이 아니다. 한 번 흘끗 보고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내음 씨의 소중한 동지로 자리 잡는다.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내음 씨는 아마 10년 아니면 그 이상 이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새벽길을 다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분명 그때도 동지들은 내음 씨의 옆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조금 든든하다. 한 번도 말을 나누지는 않지만 내음 씨의 새벽길을 같이해준 동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그 동지들도 새벽길이 혹시 외롭고 쓸쓸할 때 느낄 때 나의 존재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그런데 내음 씨는 덩치가 남들에 비해 조금 큰 자신 때문에 동지들이 어두운 새벽길에서 놀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다음부터 옷을 살 때는 이제까지 주로 입었던 무채색 계열의 옷보다 조금 밝은 계열의 옷을 사보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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