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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EP1. 방출

by 심내음

민재는 눈을 떴다. 아직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이다. 몇 시쯤 되었을까, 민재는 손을 뻗어 머리맡 스탠드의 휴대폰을 짚는다.

'5:43분’

알람을 맞춘 50분까지는 7분이 남았다. 민재는 알람을 맞추었어도 알람 소리를 듣고 깨는 경우보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는 경우가 1대 9 정도로 많았다. 바디 클락이 정확하다고 민재가 좋아할 상황은 아니었다. 40대가 되고 나서 화장실에 가는 빈도가 점점 많아졌고 지금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 깬 것이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물을 하루에 2~3리터씩 마신적도 있었지만 요새는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서 물도 자주 마시기 부담스러웠다.

화장실을 가서 볼일을 본 후 머리를 간단히 감았다. 아니 감았다기보다는 물을 적셨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샴푸를 쓰지 않고 물만으로 머리를 헹구었으니까. 민재가 샴푸를 쓰지 않는 무푸족이 된 것은 5년 전 일이다. TV 다큐멘터리에서 환경 운동가가 말하는 무샴푸 머리 감기를 보고 이런 거라도 공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속내는 합법적으로 샴푸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아무튼 머릿결이 안 좋아진다고 아내가 걱정을 했지만 민재는 아침에 머리를 감지 않으면 두피에서 내려오는 소위 개기름 때문에 하루 종일 얼굴이 번들거렸고 때로는 눈이 따갑기까지 하여서 어쩔 수 없다고 볼멘소리로 항상 투정 부리듯 말하곤 했다.

민재는 거실로 나가 큰 참빛으로 머리를 대충 빗었다. 어차리 요새는 추운 날씨 때문에 패딩에 달린 모자를 꼭 쓰기 때문에 나중에 사무실에 가서 머리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만 빗으면 된다. 그리고 얼굴에 스킨 겸 로션을 바른다. 문득 바르던 스킨로션 통을 보니 내용물이 반 정도 남았다.

‘겨울 끝날 때까지 쓸 수 있을까? 어차피 봄 되면 안 발라도 될 텐데’

민재는 남은 양이 간당간당할 것 같았다. 민재는 지성 피부여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더 이상 얼굴에 화장품을 바를 필요가 없다. 세수를 하고도 얼굴도 별로 땅기지 않을 정도다. 만약 겨울이 끝나기 전 화장품이 모자라 다시 화장품을 사게 되면 봄부터 한동안은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별로 실용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고민이 많다. 일단 회사 먼저 가자’

민재는 패딩을 입고 집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 아이들이 휴지통에 제대로 버리지 않은 쓰레기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고지서 및 프린팅 된 종이들을 치우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늦을 것 같았다. 매일 아침마다 하게 되는 비슷한 고민이다. 40이 넘은 민재는 이제 이런 고민에 익숙해질 법한데 아직도 고민을 하는 자신에 대해 가끔 고민을 한다.

어느덧 사무실에 도착한 민재는 노트북 먼저 켰다. 노트북을 켜고 부팅이 되는 동안 화장실을 가려는데 누군가 민재를 불렀다.

“민재야, 잠깐 차 한잔 할까?”

옆 부서에 있는 박 선배였다. 예전에 같은 지역에 파견을 나가 근무를 하였는데 회사 사람들 중에서 가장 민재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사무실에는 박 선배와 민재 두 사람 밖에 없었다.

“예, 형님. 어쩐 일이세요. 아침 드셨어요?”
“응 먹었어.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저기 빈 회의실로 가자”

박 선배는 자리 옆 쪽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고 민재도 그런 박 선배를 따라 회의실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달걀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박 선배는 머그컵에 든 커피로 추정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윽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민재야, 너 우리 부서로 온다며? 지난주에 신 부사장 하고 우리 강 이사가 저녁 먹으면서 니 얘기도 한 모양이더라. 너 우리 부서로 보내고 싶다고 언제 올 거냐?”
"네? 제가요?”

민재는 황당했다. 팀장인 신 부사장이 나한테는 일언반구 없이 나를 다른 부서로 보내겠다고 했다고?

- EP2. 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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