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 들어서자 법인장 비서인 켈리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민재는 켈리에게 법인장과 약속이 있어서 왔다고 말하고 법인장이 자리에 있는지 물었다. “민(민재의 영어 이름), 프레지던트(법인장 영어 직함)가 조금 전 긴급한 일이 생겼다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래서 민하고 약속을 오후로 변경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요? 오후 몇 시요?” 재민은 약간 짜증이 났다. 일정이 바뀌면 미리 연락을 주어야 헛걸음을 안 하지 않는가 “안 그래도 전화를 하려던 차였어요. 오후 3시에 봐요” 재민의 생각을 들은 듯이 전화를 하려던 차였다고 말하는 켈리의 말을 듣고 재민은 약간 움찔했다. 어쨌든 법인장이 지금 없으니 재민은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돌아온 재민은 다시 PC를 켜고 메일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다. 글로벌전략팀에서 온 내년도 전략회의 관련 메일을 열렸는데 재민의 전화기가 울렸다. “김 과장님, 잘 지냈어요? 박형수에요.” “아이고 어쩐 일이세요 박 과장님. 영국에 오신 거죠? 번호 보니까 그렇네요 오셨으면 식사 같이 해야죠~” “ㅎㅎ 과장님. 안 그래도 도착 신고 드리려고 전화한 거에요. 지금 호텔로 이동 중이에요.” “그러셨구나. 이번엔 얼마나 계세요? 출장이 많아서 와이프분이 싫어하시겠어요. ㅎㅎ” “아뇨 저도 결혼 4년 차라 ㅎㅎ. 이번 출장은 3주에요. 이것저것 이슈도 있고 감사 건수도 하나 있어서요” “감사요? 무슨 일 있나요?” 재민은 감사라는 말에 갑자기 전화기를 더 세게 쥐게 되었다. 회사 내에서 가장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내가 감사 대상이었다면 나에게 이런 식으로 먼저 전화를 할리가 절대 없으니까 “네, ㅎㅎ. 어떤 분이 사고를 좀 치신 것 같아요. 사실 그건 때문에 내일모레쯤 과장님도 좀 뵙고 싶어요. 과장님은 아니니 걱정 마시고. 지금 민 부장님 하고 인수인계는 다 하신 거지요? 민 부장하고 여기 주재 나와있는 방 차장이 작년 연말에 술을 세게 드시고 큰 액수를 회사에 비용 청구를 하셨는데 한 건이 아니고 좀 여러 번으로 많더라고요. 그런데 방 차장이 후배다 보니 더 세게 징계를 받을 것 같아요. 방 차장은 민 부장이 결재를 시킨 거라고 말을 하고는 있는데 그래도 본인 카드로 본인이 결재한 것이기 때문에 징계를 피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아마 곧 귀임 조치될 것 같고 민 부장이야 지금 임기가 끝나 김 과장님이 나와 계시니 아마 본사 귀임 조치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에도 문제가 많은 것 같아 김 과장님 도움을 좀 받고 싶네요. 시간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민재는 알겠다 하고 박 과장과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법인장 보고 시간이 바뀐 게 오히려 잘 되었네” 민재는 법인장이 일이 생겨 나가면서 오후로 보고 시간이 바뀐 건 자신이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법인장에게 방금 전 인사팀 박 과장에게 들은 내용만 보고하면 되고 민재 자신이 나서서 민 부장의 부정 의혹에 대한 부분을 법인장에게 말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실이라도 본인이 같이 있던 부하직원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새로운 사람이 말하는 것을 곱게 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법인장의 관리 책임도 말이 나올 수 있고 말이다. 그렇게 민 부장은 파견 기간 동안 업무에 대해 감사를 받게 되었고 민재는 별 탈 없이 새로운 법인의 업무에 적응해갈 수 있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민 부장은 본사로 복귀하자마자 곧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어 자회사로 좌천 형식의 이동을 당하게 되었다 한다. 하지만 민재는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민 부장을 본사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