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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범인인 줄 알았다.

by 심내음

새벽 1시 20분. 한 여자가 골목을 전력 질주하고 있다. 뒤를 돌아보며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 여자의 뒤를 보니 또 한 물체가 달려가고 있다. 남자인 듯하다. 모자를 눌러쓰고 달리는데 가로등 밑을 지나갈 때 모자 밑 입이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여자를 쫒고 있으면서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이 미소를 짓고 있다.


내음 씨가 그 두 사람을 본 건 앞에서 도망가던 여자가 산 앞 진입로로 접어들 때쯤이다. 내음 씨의 2층 방에서 그 진입로가 정면으로 보인다. 늦은 시각에 뛰어가던 여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모자를 쓴 남자가 뒤쫓아 달려가는 걸 보고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음 씨는 전화를 집어 들고 112를 눌렀다.

" 여보세요, 여기 어떤 여자가 도망가는 걸 봤는데 뒤에 수상한 남자가 쫒아가고 있어서요 "


내음 씨는 경찰에 자기가 본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두 사람이 달려간 방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방향에는 산 중턱쯤 버려진 폐가가 있었는데 거기서 언뜻 불빛이 짧게 비추어지는 걸 보았다. 손전등 아니면 라이터 같은 불 빛이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내음 씨는 그 집에 가보고 싶어 졌다. 경찰이 올 때까지 멀리서 보기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집에서 나와 조금 전에 본 산 중턱 집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5분쯤 지났을까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경찰차 한 대가 길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는 곧 내음 씨 앞에 도착했다. 경찰차 창문이 열리며 한 경찰관이 내음 씨에게 말을 걸었다.


" 선생님 여기서 뭐하십니까? "

" 아 네 제가 조금 전 신고했는데요, 혹시나 해서 나와봤습니다"

"저희가 지금 가니까요 댁에 들어가 계세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얼굴을 보신 건 아니죠?"

"네 저희 집에서 본거라 뒷모습만 봤습니다. 남자가 빨간색 에나멜 점퍼 같은 것을 입고 있었어요. 달빛에도 약간 번쩍거리더라고요"


경찰차는 내음 씨를 남기고 다시 출발했다. 내음 씨는 갑자기 얼마 전 본 신문기사가 문득 생각나 휴대폰을 꺼내어 포털 사이트를 열었다.


' 살인사건 또 발생. 야구점퍼 살인마 또 활동하나 '


얼마 전 발생한 살인사건이 예전부터 잡히지 않은 연쇄 살인마의 소행이라는 기사였다.


' 무서워 죽겠네. 왜 이렇게 사람을 많이 죽여. 야구점퍼는 왜 입고 사람을 죽이는 거야 '

내음 씨는 오른손으로 스크롤해가며 기사를 계속 읽었다. 산 중턱 집 쪽을 보니 경찰차가 도착한 것 같았다. 상황이 궁금했던 내음 씨는 그 집 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집 앞 공터에는 경찰차 경광등이 번쩍이며 돌고 있었고 경찰관 한 명이 웬 남자를 뒤에서 잡고 차 쪽으로 가고 있었다.


" 아이 진짜 아니라니까요. 왜 나를 잡아가요. 저 여자가 먼저 나를 쳤다니까요 "


수갑을 찬 남자가 경찰에게 끌려가며 소리쳤다.


" 아, 아까 그 선생님 이시구나. 상황 정리 다 됐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 녀석이 뭐 이상한 짓을 하려고 했던 것 같던데 빨리 신고해 주신덕에 저희가 잡았어요. "

또 다른 경찰관이 따라 나오며 내음 씨를 보고 말했다. 그 경찰관 뒤에 여자 한 명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까 도망갔던 여자인 것 같았다.


" 이분이 신고해 주신 분이세요. 큰일 날 뻔하셨는데 감사인사라도 하시면 되겠네요 "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는 한 바탕 소동을 겪은 탓인지 힘들어 보였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긴 코트를 입고 단추를 목에서 무릎까지 다 채웠는데요 장갑을 낀 손으로 앞 매무새를 꽉 쥐고 있었다.


" 뭐 별말씀을요. 이런 일 있으면 신고해야죠. 괜찮으세요? "


내음 씨는 경찰관에게 답을 하고 여자를 쳐다보며 말을 했다.


"...."


여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 조금 전 일 때문에 충격을 심하게 받아서일 거라고 내음 씨는 생각했다.


" 저희는 체포한 이 녀석 데리고 서로 돌아가야 하는데 선생님 괜찮으시면 이 여자 분하고 잠시 좀 계셔주시겠어요? 이 차로 같이 갈 수는 없고 저희가 다른 차를 불렀는데 오늘 사건이 많아서 한 30분 걸릴 것 같아요 "

내음 씨는 그러겠다고 했다. 경찰관은 내음 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곧 차를 타고 체포한 남자와 함께 사라졌다. 내음 씨는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기다릴까 고민이 되었다.


" 저기...."


고개를 돌려 여자에게 말을 걸려던 순간 무언가 날카로운 물건이 내음 씨 몸으로 들어왔다. 내음 씨는 바닥에 쓰러지면서 여자가 서 있던 곳을 쳐다보았다.


" 내가 언제 신고해달라고 했어? 왜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들어서..... 내 아지트에 경찰을 들어오게 하고 넌 살려둘 수 없어.... "


내음 씨는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앞에 서 있는 여자는 어느새 코트를 풀어헤치고 오른손에 날카로운 칼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 순간 내음 씨는 여자가 코트 안에 입고 있던 옷이 유난히 번쩍거려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광택이 나는 빨간색 에나멜 야구 점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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