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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QV(Rear Quarter View) 리어 쿼터뷰

RQV : 차를 후면 45도로 바라보는 각도- 1 -

by 심내음

"네 그럼 다섯 시까지 이 장소로 돌아오겠습니다"


민석은 자동차 회사 직원에게 차 키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안전 운전하시고 무슨 문제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그럼 오후에 뵙겠습니다."


자동차 회사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 파란색 부가티 치론(Bugatti Chiron)을 싣고 온 뒤쪽 적재칸이 투명한 트럭에 다시 올라탔다. 이제부터 이 스머프 같은 아니 그냥 스머프는 아니고 값비싼 보석을 몸에 두른 것처럼 럭셔리한 스머프 같은 이 녀석은 오후 5시까지 온전한 나의 책임이다.

민석은 포토그래퍼다. 여러 가지 사진을 찍는데 자동차가 주 전공분야다. 민석이 찍은 사진들은 주로 디지털, 인쇄물 등 각종 광고의 이미지 컷으로 실린다. 민석은 오늘 어디서 사진을 찍을지 고민을 하다 강원도 삼척에 가기로 결정했다. 삼척항과 삼척 해수욕장을 잇는 5KM 남짓 해안도로가 오늘 이 차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더구나 오늘은 날씨도 맑고 좋아서 하늘과 바다의 깨끗한 푸른색이 내려와 이 녀석을 물들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딱 알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시간을 달렸을까, 눈보다 민석의 코로 먼저 짭조름한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흰색 구름과 파란 하늘, 흰색 파도와 파란 바다가 잘 어울리는 커플이 즐겁게 더블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처럼 행복하게 보였다. 민석은 사진을 찍기 알맞은 스폿을 찾아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문을 열고 내렸다.


'사진 잘 나오겠네. 찍기도 전에 잘 찍힌 사진이 눈에 보여'


두 시간 운전에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로 피면서 민석은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차 앞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 옆 돌무더기에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이게 뭐지? 그물인가?'


초록색의 망이 눈에 들어왔다.


"아 죄송해요. 부딪히지 않으셨죠?"


민석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햇빛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햇빛 때문인지 햇빛과 다르게 그녀 뒤에서 나오는 광채(?) 때문이지 민석은 헷갈렸다.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몸이 마취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느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 여자 친구가 생기면 전화통화를 할 때 이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바빴어? 걱정했잖아' 같은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늘 상상했던 약간 카랑카랑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런 목소리였다.

"같이 일하는 이모님이 실수로 저기서 놓치셨어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도로 옆 언덕을 가리켰다.


"아 네. 저기서 그러셨군요"


민석은 자신이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녀의 얼굴만 넋 나간 듯이 보면서 대답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그런 자신이 창피했다. 도대체가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얼굴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런 공기가 무안했던지 약간 고개를 숙이며 살짝 웃기 시작했다.


"아 네. 저기 알아요"


알기는 뭘 안다는 건가. 민석은 갑자기 분위기가 묘해져서 아무 말이나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저 그만 가봐야겠어요. 출근 시간에 늦겠어요"


그녀는 돌 위에 떨어진 초록색 망을 집어 들고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아 저 저기요"


민석은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벌써 민석의 소리를 듣기 힘든 위치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꼭 다시 만나야겠어'


이유는 모르겠다. 그녀를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민석은 지금 세계에서 빠르기로 따지면 몇 대 안 되는 슈퍼카의 키를 자신의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멀리 못 갔을 거야'


민석은 잽싸게 차를 타서 시동을 걸고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빠른 차 덕에 곧 근처 도로를 누비면서 주변 길도 다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출근을 한다고 했는데 주변에 무슨 근무를 할 만 사무실, 식당, 관공서 같은 건 없었다.


'어디 갔을까, 갈 곳이 없는데'


갑자기 민석의 눈에 저 멀리 오른편 둔치 아래 선착장에서 바다로 나가는 배 한 척이 보였다. 저기인가? 갑자기 저 배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어를 D로 내리고 액셀을 밟아 급하게 차를 그쪽으로 몰았다. 차는 굉음을 내고 달려갔다. 빨리 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엔진 소리 사이로 그녀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배는 아직 선착장을 나가지 못했고 민석의 차는 배를 삼킬 듯한 기세로 급정거했다.


"저기 저기요~! 멈춰주세요 저기요~!"


배를 보고 있는 힘껏 외쳤다. 조타실에서 사람 그림자 하나가 나오는 게 보였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그녀일까?


- 2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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