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도 그냥 지나치지 말자
오늘은 대학 본문 중 知止而后 有定에서 왜 能定이 아니고 有定인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知止而后 有定 다음에는 定而后 能靜, 靜而后 能安 安而后 能慮 慮而后 能得이라고 해서 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后(뒤 후)는 後와 같은 뜻이다.
주자의 풀이를 살펴보면, 止는 지선으로서 머물러야 할 곳이다. 定은 뜻이 정해진 방향이 있는 것이다. 得은 머물 곳을 얻음이다. 그래서 이렇게 풀 수 있다. “머물 곳을 안 뒤에 갈 방향이 정해지고, 방향이 정해진 뒤에야 마음이 차분할 수 있으며, 마음이 차분해진 뒤에야 자신의 상황에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해진 뒤에야 일의 처리를 잘 생각할 수 있으며, 잘 생각한 뒤에야 머물 곳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주자는 ‘편안한 뒤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안자(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 안회를 높이는 말)만이 할 수 있는 경지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의 상황에 편안해지는 것도 어렵고 생각 잘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고, 그렇다면 당연히 定도 어려울 것이다. 그에 앞서 知止부터 어려운 일이다. 멈출 데를 아는 것이 확고하면, 갈 방향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고, 갈 방향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면 그 이후도 다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심히 보아야 할 구절은, 왜 能定이 아니고 有定인가 하는 것이다.
정(定)을 ‘가야 할 방향을 정한다’는 뜻의 한 단어로 표현하여 ‘확정하다’라고 하면, 확정하거나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만 있을 뿐 그 중간은 없다. 그래서 있을 유(有) 자를 써서 유정(有定)이라고 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반면, 있거나 없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중간 단계가 많은 활동에 대해서는 잘할 능(能)이라고 했을 것이다. 미숙함과 능숙함 사이에 많은 스펙트럼이 있기 때문이다. 차분함, 편안함, 사려 깊음, 얻음, 이 네 가지는 중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확정한 것이 나중에 변경될 수는 있다. 그러나 변경 가능하다고 해서 차분함, 편안함, 사려 깊음, 얻음처럼 중간 단계가 많은 것은 아니다. 수영 선수가 되기로 했다가 사이클 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바꿀 때는 확고하게 바꾸는 것이다. 확정하는 것은 중간이 없다. 이렇게 한자의 뜻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원문을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