后와 後, 靜과 安
오늘도 이 문장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서 더 다루어야 할 것 같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 有定, 定而后 能靜, 靜而后 能安, 安而后 能慮, 慮而后 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여기서 두 가지를 더 언급하자면, 하나는 后와 後 이야기다. 훈(뜻)과 음(소리)이 같은 ‘뒤 후’를 왜 다른 글자로 썼을까 하는 것이다. 앞의 后는 현재 뒤의 의미는 완전히 사라지고 왕비의 의미로만 사용하지만 고대에는 뒤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後가 나와서 后는 왕비의 의미만 가지게 되었다.
한자는 고대로 갈수록 글자 수가 적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글자 수가 많다. 그것은 문화가 발달하면서 새로운 사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처 글자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때는 한 글자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혼란스러워져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같은 텍스트에서 두 개의 다른 모양의 글자를 사용했을까? 가장 합리적 추론은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이 문장이 후대에 삽입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선후의 후를 后로 쓰면 先王처럼 한 단어로 보일까 봐 일부러 後를 써서 구분한 것이 아닐까 추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두 개의 뒤 후 글자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다룬 책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 아는 분 있으면 답글 달아주시면 좋겠다.
그다음에는 定, 靜, 安의 순서다. 定은 방향을 정하는 것이니 맨 앞에 오는 것이 당연한데, 靜과 安의 순서가 이게 맞나 의문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편안해야 고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문장에서는 본문의 순서를 존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차분하다, 고요하다로 풀 수 있는 靜은 여기서는 ‘고요하다’보다 ‘차분하다’가 더 적절할 듯하다. 고요하다는 寂에 더 어울리는 풀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요하다는 것은,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적연부동 감이수통천하지고(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에서 보듯이 궁극의 경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靜과 寂은 구분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靜은 우리의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 상태이고, 安은 靜보다 더 깊은 편안함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이 차분함 역시 쉽게 얻어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定, 靜은 쉬워서 앞에 온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작용을 순서로 따져봤을 때 앞에 왔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