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대해서는 오래 망설이지 않고 답을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랬다.
어리석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친구이다.]
친구, 그 자체를 두려워했다기 보다 '친구'라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 혹은 학교에서건 사회에서건, 또 다른 모임에서건 친분을 가져야 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그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것이 힘들었다.
괴괴한 소동의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이 그랬다. 매 시간 혼란에 갇혀 있지만 종종 무심한 어른들의 말과 시선은 아이들의 맘에 가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증발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시간이 평화롭고 자유롭다 말하지만 사실 매 학기마다 어떤 친구를 만나,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두려웠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친구는 가족 이외에 처음으로 관계 맺고 사랑하는 첫번째 타인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내게 등을 돌리는 것이 가장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나쁜 짓을 해서라도 더 강하게 나와 친구를 단단하게 묶어두려 했던 것 같다.
매일 생존의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내어 주던 숙제보다 더 풀기 힘들었던 친구들. 칼날처럼 날카롭고 지독해서, 끝내 생채기를 내거나 생채기를 입고야 마는 성장의 시간의 끝에, 사실 해피엔딩도 뾰족한 대안도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친구와의 관계는 피구 같았다. 편가르기에서 마지막까지 선택을 받지 못할까 두려웠던 시간, 날아오는 공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금을 밟았다고 바깥으로 몰려나기도 한다. 장난으로 시작해, 마지막 남은 아이를 서로를 죽이려 덤벼드는 모습도 친구라 불리는 패거리의 모습과 닮았다.
그 시절, 나도 아이들도 나빠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진심과 적의를 능숙하게 감추지 못해 너무나 투명한, 그래서 금새 아스라지고야 마는 아이들의 마음은 약해서 때론 지독하게 악해지곤 했다.
악한 마음을 감추거나 약한 자를 배려하는 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우리들은 피구를 하듯 서로의 진심에 가닿지 못하고 서로의 맘을 튕겨 내거나 뜻하지 않은 순간 뒤통수를 가격했던 것 같다.
좀 자라나면 괜찮아지려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관계는 어렵고 서툰 일이다. 충분히 자라지 못한 채로 굽어버린 우리 뒤통수는 어린 시절의 그 나약한 목덜미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