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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최재훈 Feb 02. 2024

나의 장래는 [          ]

다음 질문 앞에서 한참 생각이 떠돈다. 멈칫 멈칫 몇번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나는 이렇게 쓴다.


나의 장래는 [끊어진 다리의 저편에 있다.]


미래를 긍정할 수 없는, 나는 과거에 갇힌 사람이다. 어쩌면 과거라는 시간의 턱에 걸려 털썩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장래라는 단어는 목에 턱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식도보다 훨씬 더 커다란 비타민 같이 시고, 답답하고, 결국 상처를 낸다. 


나이가 들면 미래에 더 가까워질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와 더 친밀해지는 것도 아직 화해하지 못한 과거를 떠나보내고 미래를 맞이할 용기도,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종종 과거라는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는데, 그게 어쩔때는 제법 푹신푹신하기도 하다. 


장래를 이야기해야하는데, 계속 과거가 떠오른다. 


기억에는 스토리가 없다. 갑작스런 비에 눅눅하게 젖었던 신발의 습기, 쿵 떨어진 심장 위로 쏟아지던 햇살, 귓속말로 목덜미를 간질이던 친구의 숨결, 바람맞고 돌아오던 길에 맡았던 찬란한 꽃향기...


기억은 기승전결 없이 그 순간의 감각과 정서로 남는다. 돌이켜 보면 대부분 기억은 억울하고, 분했던 그 시간을 끈질기게 붙잡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든다. 그래서일까? 툭 끊어진 다리 저편에서 건너오는 법을 모른 채 남겨진 과거가 자꾸 오늘을 향해 돌팔매질을 한다.  


나는 어쩌면 끊어진 다리 위에 서서 건너편에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나의 과거인지, 나의 미래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것은 이 편과 저 편 사이의 무너진 다리를 잇는 시간. 지금 문장완성검사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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